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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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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머릿장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수납장의 한 종류. 장과 농(籠)은 개판(蓋板 : 맨 위에 댄 나무판)에 의하여 구별하는데‚ 장은 개판(이마받이 ?板)을 가지되 몸체보다 좌우로 약 3∼4㎝ 더 크고 몸체는 층별로 분리됨이 없이 통으로 쓰게 되어있는 것을 말한다. <역사> 장의 발생이나 기원에 관한 문헌 기록은 없으나 1775년에 간행된 《역어유해보 譯語類解補》에 `수궤(竪櫃)장`이라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장은 우리 고유의 용어이며 한자로는 수궤(竪櫃)‚ 즉 세우는 궤라고 하였다. 수궤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장은 궤가 발전된 것이다. 즉 장은 처음 궤에서 양식이 변화되어 단층장인 머릿장의 형태가 되고‚ 이것이 2층 또는 3층으로 변화된 것이다. 조선후기의 왕조실록에 나타나는 칠목기전(漆木器廛)은 한성(漢城)의 역사를 서술한 『漢京識略』에서는 장전(欌廛)이라고도 하면서 장(欌)이란 중국제도에 의거한 수궤(竪櫃)라고 하였다. 즉 장이란 말 자체가 한국적인 용어이고 조선 후기의 왕실관계에서 처음 보인다. 따라서 서울 광통교에 장을 파는 점포가 등장한 것은 19세기 무렵이 아닌가 생각된다. 과거 궁중에서만 사용되던 것이 민간에까지 수용층이 확대됨에 따라 장 전문점이 출현한 것이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중앙에는 두 짝의 문판을 달아 2층 또는 3층 등의 칸을 만들어 의류를 보관하게 되어 있다. 농은 개판이 없으며 몸체와 천판이 같은 상자형태로 중앙에 문판을 달아 상하로 분리되어 서로 포개놓고 의류 등을 저장하게 되어 있으며 안방(내실:內室)가구를 대표한다. 반상의 신분계급과 빈부의 차이가 심했던 조선시대에 장은 양반과 부유층 전유물이었으며 따라서 매우 귀하였다. 임진왜란 직후의 우리나라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가옥규제로 인해 집의 규모가 그다지 크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집안에서 사용하는 집의 크기도 대체로 그 규모가 작았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경제적인 부흥으로 가옥의 크기가 커지면서 가옥의 크기에 맞추어 가구의 크기도 커졌고 옷을 걸쳐둘 수 있는 의걸이장도 제작되었다. 조선 후기의 장은 그 전의 가구에 비해 쇠목과 동자 등 기둥은 굵어지고 꾀동자와 헛동자가 등장하며 알갱이에 사용한 화장재는 얇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대체로 대형 장은 방 윗목에‚ 소형 장은 아랫목에 놓고 썼는데‚ 장 위에는 혼함(婚函)·궤(櫃) 등을 올려놓고 장식하기도 한다. 종류로는 층별에 따라 2층장·3층장·4층장 등으로 불리는 것이 있고‚ 재료에 따라 용목장·먹감나무장·죽장(竹欌) 등으로도 불린다. 안방용 소형 장으로는 버선장·애기장·반닫이장 등이 있고‚ 사랑용에는 서장(書欌)·도포장·의걸이장·탁자장(은 턱솔짜임은 판재가 휘거나 수축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고려된 것으로 문변자(門邊子 : 문짝의 좌우상하에 이어 댄 테두리나무)를 두른 문판 등에도 이용된다. 장은 전면에 부재(附材)를 써서 장식적 효과를 잘 나타내게 되므로 목재의 성격에 따라 골재와 판재를 선택하게 된다. 안방용 부재로는 느티나무·소나무·오동나무가 많으며‚ 채색을 넣어 화려한 장식을 한 것으로 수장(繡欌)·화각장(華角欌)·화초장(花草欌)·나전장(螺鈿欌) 등이 있다. 사랑방에 쓰이는 것으로는 광택이 없고 검소를 선비의 모범으로 생각하여 주로 나뭇결무늬의 소박미를 나타낸 소나무·오동나무·참죽·죽재·괴목 등이 주재(主材)이다. 이 유물은 머릿장으로 중앙에 보상화문양의 앞바탕이 있는 여닫이문이 있고‚ 제비초리불로초와 보상화문양에 박쥐문을 투각한 경첩이 양옆에 3개씩 달려있다. 상부에는 4개의 서랍이 있으나‚ 열리지는 않으며‚ 하부에는 3개의 서랍이 있는데 하부의 것은 열린다. 이들은 모두 박쥐들쇠받침에 활형들쇠가 달려있고 화형(花形)의 귀장식부터 망두형 감잡이가 가구 전체의 거의 모든 이음새부분을 연결해주고 있어 금속으로 느껴지는 화려함이 돋보인다. 하부의 서랍 위로는 머름간이 5개‚ 4개‚ 3개씩 3층이 있고‚ 문판 좌우에 2층의 쥐벽간이 있다. 그 위로 상부의 서랍 아래에 1층의 머름간 3개가 보인다. 천판의 귀솟음에는 음각으로 화문(花紋)을 새긴 장식이 보인다. 불로초 귀장식과 다리부분에도 금속장식이 보인다. 양쪽 측널에는 팔각형들쇠받침에 활형들쇠가 부착되어있고‚ 앞쪽 문 아래에서 국화들쇠받침에 활형들쇠가 달려있다. 나무의 잔잔한 결이 문짝과 쥐벽간 부분은 가로로‚ 나머지 부분은 세로로 되어 있어 그 지루함을 벗어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정신문화연구원) 한국의 목가구(2002년‚ 서울역사박물관) 운현궁 생활유물(2003년‚ 서울역사박물관) 옛가구의 아름다움(1996년‚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유사용어> 수궤(竪櫃)卓子欌) 외에 두루마리 서권(書卷) 등을 보관하는 단층의 경축장(經竺欌)과 같은 머릿장이 있다. 그리고 주방용의 식기장으로서 찬장(饌欌)·찬탁자장(饌卓子欌) 등이 있다. 장의 구조로서 가장 눈에 뜨이는 개판짜임새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두꺼운 통판을 그대로 사용한 개판(서안·문갑·머릿장용)과‚ 또 하나는 골재(骨材)와 판재(板材)를 짜 맞추어 사변을 골주(骨柱)에 직접 대고 그 안을 널판으로 끼워 맞춘 개판(장·탁자 등) 형태가 있다. 이 때 기둥과 쇠목을 이을 때는 촉짜임이 되고 모서리귀는 연귀짜임이 되는데 사변의 골주에 널판을 끼울 때는 턱솔짜임이 된다. 이와 같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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