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토기뚜껑(3)

추천0 조회수 23 다운로드 수 0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토기뚜껑(3)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토제로 만든 그릇의 뚜껑. <발달과정/역사> 토기는 원삼국 시대의 와질토기에서 결질토기로 발전된 토기로 기종과 기형이 다양하게 발전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4세기 후반이 되면 낙동강을 경계로 그 동쪽과 서쪽에서 신라와 가야 토기가 지역적 특징을 갖는 토기양식으로 정립되나 동일계의 흐름 속에서 발전한다. 특히 신라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에 굴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녹로를 사용하여 다량으로 생산하였다. 1100∼1200℃의 고온으로 구워져 지금의 옹기보다 더 단단하여 흡수성이 거의 없고‚ 표면에 유약을 바르지 않았으나 자연유가 부분적으로 덮여지는 경우도 있다. 기형은 기본적으로 굽다리접시와 목긴항아리가 있으며 특색 있는 기형에는 동물형토기와 토우가 있다. 고구려·백제토기와는 달리 장식성이 강한 기하학적 문양 외에도 사람‚ 말‚ 사슴 등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또한 동물과 다양한 인물모양의 토우가 붙여진 토기와 말‚ 수레‚ 배 등 각종 상형토기가 많이 출토되고 있다. 세부 형식에서 신라군과 가야군으로 나누어진다. 신라군은 자체적으로 토기가 발전한 반면에 가야군은 청동기나 목기의 형식을 본뜨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신라·가야토기에 나타나는 무늬는 다양하고 세련된 침선문이 위주가 되어 있다. 고식도질토기라고 부르는 초기의 토기에는 무늬가 잘 베풀어지지 않으나 신라토기와 가야토기로 분화하는 시점인 4세기 후반에서부터 뚜껑과 몸통에 각종의 무늬를 시문하게 된다. 이 때의 토기 무늬는 다양한 치구(齒具)를 이용한 기하학적인 무늬와 선각화문(線刻畵文)으로 나눌 수 있다. 신라토기의 무늬를 시기별로 정리하면 밀집파상문과 점열문이 처음에 등장하고 차츰 집선문‚ 원권문‚ 삼각거치문‚ 침엽문(어골문) 등의 기하학적인 무늬가 성행한다. 그리고 6세기 무렵에는 삼각형을 연결한 거치문과 그 아래 반원문을 연접한 거치반원문이 유행하면서 토기에의 시문범위가 좁아지는 경향이 있다. 한편 6세기 후반부터 통일신라에 이르는 소위 통일양식 토기기의 토기에는 침선문 위주의 무늬가 사라지고 대신에 여러가지 무늬가 새겨진 도장을 이용하여 찍어낸 인화문이 유행하게 된다. <참고문헌> 신라토기의 연구(김원용‚ 국립박물관‚ 1960) 한국기하문토기의 연구(김정학‚ 백산학보 4‚ 1968) 토기와 청동기(한병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