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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수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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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이덕수 간찰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4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이 간찰은 12줄의 행서체로 쓰여진 이덕수의 두 줄글의 봉투와 함께 보존되어 있다. 편지의 내용은 "일전에 뵈온 것이 위로 되고 감사를 드립니다. 겨울인데 이렇듯 따뜻하고‚ 일상생활에 별고 없으신지 궁금합니다. 덕수는 많은 환수곡을 겨우 다 걷었고‚ 완산천향을 지내려고 지금 막 떠나려는데 추위를 무릅쓰고‚ 말로 달려가는 것이 사실상 염려가 될 것을 깨닫겠습니다. 운짐으로 보내는 편지를 동봉하니 잘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출발할 시간이어서 바쁘니 대신 갖추지 못합니다. 섣달 초 칠일 이덕수 배 이덕수(李德秀)는 독립운동가 이고‚ 호는 벽산(碧山)은 평북 삭주 출신으로 1919년 만주로 망명‚ 의민사를 조직하여 사장이 되고‚ 한족회 군사부장‚ 신흥 무관학교 통화분교의 교장등을 역임했다. 1921년 서로군정서의 부관으로 있다가 양승우와 함께 벽창 청년 의용대를 조직. 총 지휘통군부(統軍府)의 중앙의원겸 군사부차장으로 시사책진회에 참가 했다. 1925년 정의부를 조직하여 중앙위원이 되고 임시정부로 부터 평북 독판에 임명 되었다. 주로 활동무대가 만주인데 그의 친필이 유전됨은 의의가 깊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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