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초상화 : 박승환(朴昇煥)

추천0 조회수 78 다운로드 수 1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초상화 : 박승환(朴昇煥)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8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일제시대 호국인물‚ 박승환(朴昇煥) 초상화 <발달과정/역사> 대한제국 시위대 대대장인 박승환(1869.9.7~1907.8.1)의 초상화로‚ 전쟁기념관의 호국인물 현양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다. 전쟁기념관에서는 역대 전쟁?전란에 참전하여 국가를 구하였거나 전투를 승리로 이끌게 하는 등 특별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귀감이 되는 호국 선열들을 선정하여 호국인물이라 하였고‚ 그 인물의 모습을 흉상‚ 초상화 등으로 제작하였다. 박승환은 서울 반촌(泮村)에서 태어났으며‚ 별명은 성환(星煥)이다. 어려서부터 지용(智勇)이 뛰어나 군대에 복무한지 10여년에 육군 참령으로 승진하였다. 1895년 10월 8일 일본인들에 의한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자 일본인에게 보복하고자 했으나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1907년 7월 19일 일제가 헤이그 밀사사건을 구실로 고종을 강제 양위시킬 때에도 그는 궁중에서 거사하여 이를 제지코자 했으나 황제에게 미칠 것을 염려하여 중단하였다. 일제는 고종을 강제 양위시킨 후 한국을 완전히 식민지로 병탄하기 위한 준비조치로 한국군의 강제 해산을 추진하였다. 일제와 이완용 내각은 「군대를 해산한다」는 순종의 조칙을 1907년 7월 31일 만들어 놓고는 군대의 저항과 봉기가 있을 것을 두려워하여 이를 극비에 부치고 선포하지 못한 채 먼저 한국군의 탄환을 여단사령부에 거두어들이도록 비밀 훈시를 내리었다. 8월 1일 새벽에 일제는 통감 관저인 대관정(?觀亭)에 한국군이 각 연대장과 대대장을 모아놓고 「한국군을 해산한다」는 순종의 조칙을 낭독하고 군대해산식을 거행하겠으니 동일 오전 10시에 전 부대를 훈련원에 무기를 휴대하지 말고 집합시킬 것을 군부대신 이병무(李秉武)가 명령하였다. 여단장 양성환(梁?煥)을 비롯한 장령들은 비분함을 참을 수 없었으나 칙령을 받들지 않을 수 없었고 또 일본군이 4면을 포위하고 있어서 어찌할 수 없이 병영으로 돌아왔다. 일제는 한국군이 훈련원에 집합하는 동안에 일본군으로 하여금 한국군의 영문을 점령하여 대비케 하였다. 한국군 자병들은 1907년 8월 1일 오전 10시 폭우가 쏟아지는 속에서 곡절도 모르고 훈련원에 집합하니‚ 무장한 일본군 보병과 기병이 포위한 가운데 일본군과 한국군 수뇌들이 늘어서서 해산을 명하고 은사금이라고 하여 하사관에 80원‚ 1년이상 근무한 병사들에게 50원‚ 1년 미만 근무한 병사에게 5원을 주며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하였다. 한국군 장병들은 그제야 집합한 까닭을 알고 통곡을 하여 은사금을 땅에 던지는 등 비분강개 했으나 맨손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시위대 제1연대 제1대대장으로 있던 참령 박승환은 병호소한 것이었다. 이를 보고 있던 장병들이 대대장의 자결을 온 부대에 전하니 부대 장병들이 분기 격발하고 바로 탄약고를 부수고 탄환을 꺼내와 무장 봉기하였다. 제1연대대 제 1대대의 봉기소식을 들은 제 2연대 제1대대도 이에 호응하여 봉기해서 한국군 장병들은 일본군과 총격전을 벌이며 전투에 들어가고‚ 전투 후에는 상당수가 의병으로 전화하게 되었다. 박승환은 자결하여 대한제국 최후의 군인의 진면목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군대 봉기에 의한 의병운동의 대대적인 파급의 전기를 만들어 준 위대한 순국을 한 것이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알루미늄 테두리를 한 합판 액자에 유화로 그린 초상화가 알루미늄판 배접으로 부착된 형태이며‚ 하단에 공적 설명문이 지사벽지에 실크 인쇄되어 있다. 박승환의 얼굴 모습은 영정 및 관련자료 등을 바탕으로 하였으며‚ 복장은 당시의 시위대 참령 복장으로 하였다. <제원> 액자 규격 - 가로 : 45.5cm‚ 세로 : 76cm‚ 초상화 - 가로 : 45.5cm‚ 세로 : 45cm을 칭탁하고 대관<정의> 모임에 나기지 않고 중대장을 대리로 내보냈었는데‚ 군대해산의 명을 전해 듣고 크게 분개하여 “군인은 국가를 위하여 경비함이어늘 이제 외국이 침략하고 있음에도 불고하고 홀연히 군대를 해산하니 이는 황제의 뜻이 아니오 적신이 황명을 위조함이니 내 죽을지언정 명을 받을 수 없다.”하고 통분한 나머지 대대장실에서 몇 자의 유서를 쓰고 “대한제국만세”를 외친 다음 차고 있던 권총으로 자결하였다. 그의 유서에는 “군인이 능히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가 능히 충성을 다하지 못하면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다(軍不能守國 臣不能盡忠 萬死無?)”라고 씌어 있었다. 박승환 대대장의 자결의 총성은 부하장병들에게 봉기를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