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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상 : 이강년(李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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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흉상 : 이강년(李康?)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8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조선시대 호국인물‚ 이강년(李康?) 흉상 <발달과정/역사> 조선(朝鮮) 후기의 의병장인 이강년(李康?)의 흉상(胸像)으로‚ 전쟁기념관의 호국인물 현양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다. 전쟁기념관에서는 역대 전쟁?전란에 참전하여 국가를 구하였거나 전투를 승리로 이끌게 하는 등 특별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귀감이 되는 호국 선열들을 선정하여 호국인물이라 하였고‚ 그 인물의 모습을 흉상‚ 초상화 등으로 제작하였다. 이강년(1858. 12. 30 - 1908. 10. 13)은 본관 전주(全州)‚ 호 운강(雲崗)‚ 자 낙인(樂仁/樂寅)이다. 1880년 무과에 급제‚ 선전관(宣傳官)이 되었으나‚ 1884년 갑신정변 때 낙향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문경의 동학군을 지휘‚ 일본군과 탐관오리를 무찔렀다. 1895년 을미사변 때는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어 제천(堤川)으로 유인석(柳麟錫)을 찾아가 사제(師弟)의 의를 맺고‚ 유인석 의병부대의 유격장으로서 문경?조령(鳥嶺)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일본의 침략정책이 더욱 노골화되자 영춘(永春)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켜 때마침 원주(原州) 진위대를 이끌고 봉기한 민긍호(閔肯鎬)부대와 합세‚ 충주(忠州)를 공격하였다. 그후 가평(加平)?인제(麟蹄)?강릉(江陵)?양양(襄陽) 등지에서도 큰 전과를 올렸다. 1908년 용소동(龍沼?)?갈기동(葛其?)?백담사(百潭寺)?안동서벽(安東西壁) 전투 등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청풍(?風)의 금수산(錦繡山)에서 체포되어 사형당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오석 좌대 위에 청동주물로 제작된 흉상이 설치된 형태이며‚ 이강년의 얼굴 모습은 영정을 바탕으로 하고‚ 복장은 당시 이강년이 입었던 구군복을 표현하였다. <제원> 흉상 높이 : 90cm‚ 오석 좌대 높이 : 140cm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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