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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상 : 김유신(金庾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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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흉상 : 김유신(金庾信 )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8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삼국통일기 신라의 호국인물‚ 김유신 흉상 <발달과정/역사> 삼국통일기 신라의 장군 김유신의 흉상으로‚ 전쟁기념관 호국인물 현양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다. 호국인물은 역대 전쟁?전란에서 국가를 구하였거나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등 특별한 공훈을 남겨 후세의 귀감으로 선정된 이들인데‚ 전쟁기념관에서는 그 모습을 흉상‚ 초상화 등으로 제작하고 현양행사를 실시하여 왔다. 김유신(595-673)은 금관가야(金官伽倻) 왕실의 후예로‚ 아버지는 소판(蘇判)?대량주도독(?梁州都督)을 역임한 서현(舒?)‚ 어머니는 숙흘종(肅訖宗:葛文? 立宗의 아들)의 딸 만명(萬明)이었다. 629년의 낭비성(娘臂城) 전투에 중당(中幢)의 당주(幢主)로서 출전하여 큰 공을 세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642년(선덕여왕 11) 압량주(押梁州:지금의 慶山) 군주(軍主)가 되었고‚ 644년 소판 벼슬에 올랐다. 같은 해 9월 상장군(上將軍)이 되어 백제의 7개 성을 쳐 이겼고‚ 매리포성(買利?城:居昌)을 공격하던 백제군을 요격하여 크게 무찔렀다. 647년(진덕여왕 1) 1월에 일어난 비담(毗曇)과 염종(廉宗)의 난을 토벌하여 신라 왕실을 위기로부터 구하기도 하였다. 또한 660년(태종무열왕 7) 1월 상대등에 올라 신라군 5만을 이끌고 당군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켰다. 나아가 고구려공격전에도 나서 661년(문무왕 1)에는 고구려 경내까지 군량미를 실어다가 당군에게 보급해 주는 등 신라의 위기와 삼국통일과정에서 제1의 공을 세웠다. 이러한 공으로 고구려 정벌 직후 태대각간(??角干:??舒發翰)의 최고직위에 오른 후 당나라 군사를 축출하는 데 힘써 한강 이북의 고구려 땅을 수복함으로써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져 놓았다. 673년(문무왕 13) 7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835년(흥덕왕 10) 흥무대왕(興武??)에 추존되고 경주 서악서원(西嶽書院)에 제향되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흉상은 오석(烏石)의 좌대 위에 청동 주물로 제작되었으며‚ 김유신의 얼굴은 충북 진천 길상사 소장의 표준영정을 바탕으로 하고‚ 복장은 당시의 미늘갑주로 표현하였다. <제원> 흉상 높이 : 90cm‚ 오석 좌대 높이 : 140cm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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