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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상 : 을지문덕(乙支文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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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흉상 : 을지문덕(乙支文德)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8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삼국시대 고구려의 호국인물‚ 을지문덕 흉상 <발달과정/역사> 삼국시대 612년 무렵 고구려 장군이었던 을지문덕의 흉상으로‚ 전쟁기념관 호국인물 현양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다. 호국인물은 역대 전쟁?전란에서 국가를 구하였거나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등 특별한 공훈을 남겨 후세의 귀감으로 선정된 이들인데‚ 전쟁기념관에서는 그 모습을 흉상‚ 초상화 등으로 제작하고 현양행사를 실시하여 왔다. 을지문덕(?~?)은 612년 수나라 113만 대군의 침공에 맞서 고구려를 위기로부터 구하였다. 그의 일생에 대해서는 남아있는 기록이 거의 없어 잘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당시 고구려의 방어 전략을 수립하고 전쟁을 이끌어나갔다는 점에서 최고위급 관료였음을 알 수 있다. 612년 수나라의 침공은 침공 병력만 113만에 달할 정도로 수가 전력을 기울인 것이었다. 또한 수의 침공군은 요동(遼東)을 가로질러 고구려 내륙으로 진출하려는 육로군과 고구려의 수도를 직공하려는 수로군으로 나뉘어 침공하였다. 을지문덕이 이끈 고구려군은 수의 육로군을 요하 일대의 국경선에서 저지하여‚ 대군을 투입하여 각 방면으로 병진(竝進)하려던 수의 전략을 무산시켰다. 이에 수는 별동대 30만을 뽑아 우중문(于仲文)?우문술(宇文述)의 지휘로 고구려 수도로 나아가도록 하였다. 수로군과 연결하여 고구려의 중심부를 직공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때 을지문덕은 거짓으로 항복하여 직접 적정을 살펴‚ 그 허실을 정탐하여 이후의 전략을 수립하였다. 을지문덕은 적의 군사력을 소모하기 위해 거짓 패배를 가장하여 적군을 평양성(平壤城) 30리 밖까지 유인하였다. 뒤늦게 함정에 빠진 것을 깨닫고 회군하던 수군은 살수(薩水:?川江)에서 고구려군의 총공격을 받아 괴멸하였다. 을지문덕은 위기의 상황에서도 침착 대담하고 지략과 무용에 뛰어났던 인물이며‚ 시문(詩文)에도 뛰어났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흉상은 오석(烏石)의 좌대 위에 청동 주물로 제작되었으며‚ 을지문덕의 얼굴은 서울 어린이대공원의 동상을 바탕으로 하고‚ 복장은 당시의 미늘갑주로 표현하였다. <제원> 흉상 높이 : 90cm‚ 오석 좌대 높이 : 140cm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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