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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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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정자관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8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쓰던 관 <일반사항 및 특징> 조선 중기 서당의 훈장들이나 양반들이 평상시 집에서 쓰던 관(冠)으로‚ 평상복 착용시에 사용한다. 망건 위에 탕건을 쓴 다음 그 위에 덧쓰는 것이다. 원래는 당건(唐巾)이라 하는 중국제 관모 중의 하나였다. 중국 북송의 대유학자인정자(程子:공자의 손자)가 처음 쓰기 시작하여 정자관 혹은 정자건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부터 구한말까지 양반들 사이에서 널리 애용되었다. 주자관(朱子冠)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의 관제(冠制)에는 정자관 외에도 동파관(東坡冠)·충정관(沖正冠) 등이 있는데‚ 각자 자신의 취향대로 개성에 맞는 관을 선택하여 즐겨 썼다. 그중에서 후세에까지 널리 착용된 것은 위엄 있어 보이는 정자관이었다. 사대부들은 예의상 평상시에도 갓을 쓰고 다른 사람을 대해야 했기 때문에 매우 거추장스러웠다. 그래서 갓 대신 이 정자관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형태는 안에 사각형의 높은 내관(內冠)이 있고 바깥에 다시 `산(山)` 자형을 2단 혹은 3단으로 덧붙여 처리하였기 때문에 2층 정자관‚ 3층 정자관이라는 명칭을 붙이기도 한다. 위의 세 봉우리는 터져 있는데‚ 대체로 지위가 높을수록 층이 많은 것을 썼다. 재료로는 보통 말총을 사용한다. 관의 제일 하단부에는 검은 면포(綿布)로 3㎜ 정도의 테두리를 두르고‚ 관의 앞·뒤 중심과 각 층의 가장자리는 여러 개의 말총을 대어 징금수로 마무리한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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