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떡살

추천0 조회수 29 다운로드 수 0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떡살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복자 문양이 새겨진 남근형 떡살로 떡의 문양을 찍는 도구이다. 떡본 또는 떡손·병형(餠型)이라고도 한다. 고려시대부터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떡살은 누르는 면에 음각 혹은 양각의 문양이 있어서 절편에 찍으면 문양이 아름답게 남는다. 사용하는 방법은 적절한 크기로 잘라낸 떡에 물기를 묻혀서 떡살로 도장을 찍듯이 누르면 된다. 이렇게 찍은 떡은 어느 정도 굳으면 그 문양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떡살은 재질에 따라 나무떡살과 자기떡살로 나눌 수 있다. 단단한 소나무·참나무·감나무·박달나무 등으로 만드는 나무떡살은 1자 정도의 긴 나무에 4∼6개의 각기 다른 무늬를 새긴 것이다. 사기·백자·오지 같은 것 등으로 만드는 자기떡살은 대개 보통 5∼11㎝ 정도의 둥근 도장 모양으로‚ 손잡이가 달려 있어서 잡고 꼭 누르게 되어 있다. 특히 궁중에서 쓰던 사기떡살은 고급스러운 백자(白磁)로 만든 것이 많다. 떡살 무늬에는 우리민족의 모든 마음이 다 들어 있었습니다. 비례미가 물씬 느껴지는 點과 線에서부터 원앙‚ 나비‚ 목단‚ 물고기‚ 잉어‚ 거북이‚ 연꽃‚ 국화‚ 매화‚ 포도열매 등등 그 무늬들은 곧 기도하는 마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떡살은 추억의 뒷자리에 뭍힌 골동품이 되었을 뿐입니다. 우리 전통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떡살무늬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떡살을 수집하기는 해도 떡살을 떡에 이용하기 보다 집안 장식품으로 쓰일 뿐인 것입니다. 부엌이나 광에 있던 살림살이가 거실이나 안방 한켠에 모셔져 있는 것입니다. 떡살을 보면 그것이 어느 시대에 만들어져 사용된 것인지를 알 수가 있다 합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쓰던 떡살은 한옥의 선을 연상하게 합니다. 부드럽고 느슨하면서도 동그랗게 넘어가는 한옥의 선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이 떡살을 아무렇게나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각각의 문양마다 특별한 의미가 있어 사용하는 시기가 달랐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떡살의 문양은 언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백일이나 혼인 회갑때 사용하는 문양이 다르고 의미가 다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백일에는 기쁨을 의미하는 물고기나 파초를‚ 결혼에는 원앙이나 꽃위를 날아다니는 나비‚ 석류나 복을 가져다준다는 한쌍의 박쥐 등 아들 딸 많이 낳고 복받기를 기원하는 무늬를‚ 회갑에는 壽福문자나 태극 팔괘무늬 그리고 장수를 의미하는 잉어나 거북이 등의 무늬를 새겼습니다. 그런가하면 스님들의 불공에는 연꽃무늬 완자형의 무늬를 넣었습니다. 장수(長壽)나 다복(太福)‚ 부귀(富貴) 등의 간절한 바람을 숨김없이 솔직하게 글자무늬로 나열했던 것입니다.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文樣)을 부여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찍는 것을 `살박는다`고도 했습니다. 떡살은 떡손이라고도 하는데‚ 떡손이라고 할 때는 원형 문양에 손잡이가 대체로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장방형의 긴 떡살은 가래떡처럼 긴 떡에 연속무늬이거나 단독무늬라도 연이어 있는 떡살을 양쪽에서 눌러 찍은 다음 떡을 적당한 크기로 떼내거나 썰어서 먹었지만‚ 떡손의 경우는 떡을 일정한 크기로 먼저 떼내어 그 위에 떡손으로 눌러 찍었습니다. 절편에 살을 박아넣은 것은 단순히 배불리 먹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녔던 것입니다. 이 떡살에서 우리는 보는 즐거움을 누리고 더 나아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들의 미의식과 심미안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은 바로 아름다운 무늬의 떡살로 찍은 절편을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이밖에 참기름 바른 편떡을 상에 쌓을때 요철의 성형으로 미끄러지지 않게 높이 고일 수 있고‚ 무늬의 분류선에 따라 먹기 좋은 분량으로 자를 수 있도록 하는 지혜로운 기능이 있음은 물론입니다. 또한 조선의 사대부 여인들은 혼수감으로 떡살을 챙길 정도로 살림중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큰 잔칫날에 여러 사람이 모여 떡을 만들거나 남의 집 떡살을 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잃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소를 새겨두었습니다. 떡살이나 다식판은 부녀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살림 도구이고 그래서 여인들이 주인이었습니다. 절편을 만들면 이웃집과 나누어 먹었는데 그것은 떡살무늬를 자랑하면서 은연중 자신의 살림을 뽐내는 방식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떡살의 문양은 지방에 따라 또 다릅니다. 산간 지방에서는 떡살문양에 노루나 토끼가‚ 해안 지방에는 가재나 새우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특히 떡살은 남도 지방에서 발달했습니다. 나라 안에서 가장 곡식이 많이 나는 고장답게 식생활이 윤택하여 떡문화가 발달한 것은 당연한 일일것 입니다. 떡살은 단독 무늬를 제작할 수 있는 원형과 2방 연속 무늬를 만들 수 있는 장방형의 두가지 종류로 나뉩니다. 장방형에도 무늬가 단독형으로 찍혀서 이어진 것은 시제때 잘라서 나눠먹기 좋게 하기 위한 것이고‚ 연속형으로 문양이 이어진 것은 윤회 사상을 의미하여 제사‚ 한식때 많이 쓰입니다. 나무는 강하고 질기며 결이 없으며 탄력성이 있는 박달나무‚ 감나무‚ 대추나무‚ 회양목 등을 선택합니다. 떡살은 앞뒤를 모두 사용할 수 있게 양면 조각된 것‚ 육면 조각된 것‚ 홍두깨나 다듬이 방망이 같은 생활 용품을 개조해서 만든 것도 있으며 장구‚ 북‚ 까치‚ 물고기‚ 버섯‚ 실패 모양 등 다양합니다. 떡살은 떡살형태로 나무를 다듬은 후에 갖가지 문양을 복사한 종이를 다듬어놓은 나무에 붙이고 문양을 따라 창칼을 망치로 두드리며 조각합니다. 제작기간은 어림잡아 일주일 남짓 걸린다고 합니다. 생활의 사소한 것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치장하기를 즐기던 우리 문화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떡살은‚ 선조들의 격조 있던 음식문화를 대변하고 있다. <참고문헌> 두산세계대백과사전 http://my.netian.com/~jesesoft/food/ddog.htm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