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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주합
- 저작물명
- 인주합
- 저작(권)자
-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 출처
- 공표년도
- 창작년도
- 2015-01-30
- 분류(장르)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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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정보
- <정의> 낙관(落款)을 찍을 때 쓰는 도장밥을 넣어두는 기구. <일반적형태 및 특징> 일반적으로 청자‚분청‚백자로 만들고 납작하고 평평하게 생겼다. 또 뚜껑을 닫기 쉽도록 그릇에 소란턱이 달렸다. 도자기 이외에도 나무합‚ 구리합 등이 있으며‚ 대리석을 깎아 만들었고 옥합(?盒)도 있다. 이 유물은 차강 박기정이 사용하던 것으로 뚜껑에 차강(此江)이라는 호가 새겨져 있다. <차강 박기정(此江 朴基正):1874-1949> 자는 일원(一元)‚ 호는 차강‚순조조-철종조에 영의정을 지낸 권돈인이 차강의 고조부 박형호에게서 학문과 서예를 배웠던 인연이 차강에까지 맥통되어 진다. 차강은 어려서 부터 총명함이 들어난다. 6세때 이미 필재화재가 뛰어나 마을에서 신동이라 불리울 정도였다.15세에 이르러 학문과 서화가 일가를 이루다시피 되자 16세 되던 해 스승은 차강을 불러 " 더 가르칠 것이 없으니 이제는 내 곁을 떠나라. 자네의 재능을 보아 벼슬길에 나가야 할 것이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니 가고 싶은 곳에 가서 학문에 몰두하고 정정이 호전되는 대로 부를 것이니 그리 알고 떠나라"고 하였다. 다음날 강원도 강릉에 가 살면서 때가 되면 불러 달라고 하직 인사를 한뒤 떠났다. 차강이 강원도와 인연을 맺은 것도 이 연유에서다. 차강은 강직하였고 대쪽같이 곧고 불같이 급하였다. 차강은 좋은 작품을 남겼으나 이름이 알려지지 못한 것은 강원도에 정착한 후 작품활동 무대가 강원도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40년 강원도지에 그의 이름이 보일 뿐이다. 필원(筆苑) 강릉조에 선서화인칭명가(善書畵人稱名家)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강릉조에 유독 차강 한사람만 올라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방면에 차강을 따를 자가 없었음을 알게 해준다. <참고문헌> 민속지‚ 1989‚ 강원도
- 저작물 파일 유형
- 저작물 속성
- 1 차 저작물
- 공동저작자
- 1유형
- 수집연계 URL
- http://www.emuseum.go.kr
- 분류(장르)
- 사진
- 원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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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