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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다리 달린 목 긴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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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굽다리 달린 목 긴 항아리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둥근 몸통에 긴 목이 붙어 있는 그릇으로 장경호(長頸壺)라고도 한다. 몸통과 목의 높이비가 3:1이상 되는 것을 보통 목 긴 항아리로 부르며 목의 길이가 아주 짧은 항아리와 구별된다. 목 긴 항아리는 조‚ 기장‚ 수수‚ 벼 등 주로 곡물을 저장하는 용기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대부분은 무덤의 껴묻거리로 많이 나온다. 집터‚ 성터 등 사람들이 생활하던 장소에서는 나오는 예가 많지 않다. 목 긴 항아리는 다리가 있는 것과 없는 것‚ 뚜껑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등 형태가 여러 가지이다. <발달과정/역사> 목 긴 항아리는 굽다리접시와 함께 신라‚ 가야토기의 대표적인 그릇형태이다. 일반적인 의미로서 긴 목이 달린 항아리형태는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에서 보이며 청동기‚ 삼한시대에도 계속 사용된다. 특히 검은간토기는 청동기시대의 토기로 긴 목이 붙은 광택이 나는 항아리인데 여기에 쇠뿔모양손잡이(牛角形把手)와 조합되어 삼한시대 와질토기의 쇠뿔손잡이가 붙은 항아리로 변화되어 간다. 목 긴 항아리가 유행하는 것은 삼국시대인 5∼6세기 대이고 이 시기에는 백제‚ 신라‚ 가야지역의 무덤에서 여러 가지 형태의 목 긴 항아리가 출토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가 되면 목 긴 항아리는 사라진다. 이 항아리는 통일신라시대에 중국에서 새로운 기형인 병모양 그릇이나 인화문(印花文)이 있는 유개호(有蓋壺) 등이 들어서면서 굽다리접시와 함께 쇠퇴기에 접어든다. <일반적인 형태 및 특징> 긴 목 항아리는 나라별 차이가 있어서 백제지역‚ 신라지역과 가야지역은 각각 그 특징이 있다. 백제의 목긴 항아리는 목이 위로 향하면서 크게 밖으로 벌어져 아가리지름과 몸통지름이 거의 같고 몸통이 세로로 길며 다리가 붙지 않는다. 그러나 신라의 목 긴 항아리는 목과 어깨의 접합부가 각을 이루고 바닥에 굽다리(臺脚部)가 달리는 경우가 많으며 각종 기하학적인 무늬를 뚫은 것 외에 조그만 토우를 붙이기도 한다. 그리고 가야의 목 긴 항아리는 목과 어깨가 곡선적으로 연결되고 대개 굽다리가 없으며 따로 만들어진 굽받침이나 높은 그릇받침에 얹혀지는데 무늬는 주로 물결무늬에 한정된다. 도질토기(陶質土器)로 회청색(灰靑色)이며 구운 상태는 양호하고 아가리(口緣部) 전체가 떨어져 남아있지 않다. 토기 윗부분에 구울 때 자연적으로 생긴 암록색(暗綠色) 유약이 묻어있고 일부 산화되었다. 목(口頸部)은 중간에 3줄의 연속된 침선(橫針線)이 돌려졌고 몸통(胴體部)과의 경계에 1줄의 돋을띠(突帶)가 돌려졌다. 몸통은 윗부분이 편평하고 아래는 둥글며 어깨(肩部)에 2줄의 연속된 침선이 돌려졌다. 다리(臺脚部)는 벌어졌고 윗부분에 긴 사각형 굽구멍(透窓)이 5개 뚫려 있고 아래에는 2줄의 연속된‚ 굵은 돋을띠(突帶)가 돌려졌다. 다리끝(臺脚端)이 위로 말렸고 짚같은 유기물이 붙어있으며 다리 한쪽이 들렸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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