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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립 지석(申砬 誌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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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신립 지석(申砬 誌石)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죽은 사람의 성명·신분·행적·가족사항 등 여러 가지 사적을 돌이나 사기 같은 데다 적어 무덤 앞이나 관 위 또는 광 속에 매장하는 기록물. 지석은 묘지(墓誌)라고도 하는데 기록의 끝부분에 운문체의 글이 덧붙여 있으면 별도로 묘지명(墓誌銘)이라 구분한다. 지석을 무덤에 묻는 것은 그 묘가 누구의 무덤인가를 밝히기 위한 것으로서 묘비를 세울 형편이 못되거나 비를 세우더라도 뒷날 봉분이 무너져 묘를 잃어버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형태는 합형·방형·위패형·원형·원통형·제기형 등 다양하며‚ 석곽이나 석관에 직접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재료로는 돌·자기·석회·점토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사용하던 그릇·항아리·벼루 등을 쓰기도 한다. 지석은 하관 후 무덤 남쪽에 묻는데‚ 합·목함·석함 등에 담아 묻거나 벽돌을 둘러 싸 그 안에 넣기도 한다. 이것은 조선 중기의 무신인 신립(1546-1592)의 지석으로 청화백자로 만들어졌으며 모두 10장으로 되어 있다. 신립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고니시(小西行長)를 선두로 한 수많은 왜군과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참패하고 그는 남한강에 투신 자살하였다.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참고문헌> 한국 상장례(국립민속박물관‚ 미진사‚ 1990) 조선시대 지석의 조사연구(온양민속박물관‚ 서울기획‚ 1992) <사진자료> 조선시대 지석의 조사연구(온양민속박물관‚ 서울기획‚ 1992) <유사·관련 용어> 묘지·묘지명·신립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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