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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화(御賜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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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어사화(御賜花)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조선시대에 문과와 무과 과거시험에 급제(及第)한 사람에게 임금이 하사하던 종이꽃. 급제한 사람의 이름을 적은 방(榜)을 발표할 때(=方榜儀‚ 唱榜儀)‚ 홍패(紅牌)‚ 개(蓋‚ 햇빛가리개)와 더불어 어사화를 하사하여 복두( 頭)라는 급제자가 쓰는 관(冠) 뒤에 꽂게 하였다. 어사화는 참대오리 2개를 종이로 감고 비틀어 꼬아서 군데군데에 다홍색‚ 보라색‚ 노랑색의 꽃종이를 꿰어 만들었다. 급제한 사람은 어러한 어사화의 한쪽 끝을 복두 뒤에 꽂고 다른 한 끝은 명주실로 잡아 매어 머리 위로 휘어 넘겨서 입에 물고 스승 등 그동안 신세를 진 어른들을 찾아 3일간 거리를 돌아다니는 삼일유가(三日遊街)를 하였다. 임금이 베푸는 잔치인 진찬(進饌) 때 임금이 내린 꽃을 신하들이 사모(紗帽)에 꽂고 돌아가는 풍속이 있는데‚ 이것도 어사화라고 하며 창화(帽花)‚ 사화(賜花)라고도 한다. 숙종 45년(1719)에 계회(?會)를 그린 {기사계첩(耆社?帖)}의 [봉배귀사도(?盃歸社圖)]라는 그림을 보면 하사받은 잔을 들고 기로소(耆老所)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기신(耆臣)이 남여(藍輿)를 타고 머리에 은화(?花)‚ 즉 어사화를 꽂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은화`라는 말에서도 보이듯이 이는 임금의 은덕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조선 태종 7년(1407)에 인정전에서 임금이 친히 참석한 가운데에 문과 시험을 치른 후 합격자에 대해 홍패(紅牌)와 꽃[花]·일산[蓋]을 주어 사흘 동안 유행(遊行)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어사화는 과거제도와 관련하여 매우 오래된 전통으로 보이나‚ 이 중 유가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술을 많이 들어 풍속을 문란하게 하는 폐단이 있다고 하여 중단이 건의된 일도 있었다. 어사화 제작은 먼저 2개의 대나무를 맨 다음 이를 명주와 종이로 감는 도중에 종이를 꽃잎 모양으로 오려 붙였는데‚ 대오리 밑부분은 종이로 함께 싸서 묶고 위에는 대오리가 각각 벌어지도록 하였다. 이런 대오리를 2개 조(組)로 하여 맨 아래에는 꽃받침으로 간주되는 커다란 종이를 꽂고 위에는 청‚ 황‚ 홍색의 종이꽃을 여러개 붙였다. <참고문헌> 한국복식사연구(1980‚ 柳喜卿‚ 이대출판부) 한국의 복식(1982‚ 한국문화재보호협회) <유사관련용어> 창화(帽花)‚ 사화(賜花)‚ 은화(?花)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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