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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가면(鳳山假面)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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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봉산가면(鳳山假面) 원숭이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봉산탈춤 제4과장에 등장하는 원숭이 탈. 봉산탈춤은 해서지방 일대에 분포된 탈춤의 하나이다. 봉산탈춤은 7과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과장은 사상좌춤‚ 제2과장은 팔목중춤‚ 제3과장은 사당춤‚ 제4과장은 노장춤‚ 제5과장은 사자춤‚ 제6과장은 양반춤‚ 제7과장은 미얄춤이다. 탈은 26점이 사용되며 상좌‚ 목중‚ 거사‚ 사당‚ 노장‚ 신장수‚ 원숭이‚ 취발이‚ 말뚝이‚ 영감‚ 미얄‚ 남강노인‚ 양반 등이 등장한다. 상좌춤으로 탈놀이는 시작되서 미얄의 죽음으로 놀이는 끝나며 풍년을 기원하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탈을 태우는 전통이 있었다. 본격적인 놀이가 시작되기 전에는 길놀이로 분위기를 유도하였다. 사자‚ 말뚝이‚ 취발이‚ 소무‚ 양반‚ 노장‚ 남강노인의 순서로 거리를 일주하면 원숭이가 앞뒤로 뛰어다니며 흥겨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황해도 봉산군에서 전승되어 온 봉산탈춤의 정확한 기원은 알 수가 없다. 단지 내용이 산대놀이와 비슷해서 17세기말에서 18세기 초에 형성되었으리라고 추정할 뿐이다. 봉산탈춤이 다른 해서탈춤보다 유명하게 된 것은 200여년전 안초목이라는 사람이 발달시켰기 때문이다. 봉산탈춤은 5월 단오날 연희되었고 원님의 생일이나 관아의 경사 때 특별히 상연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중국 사신을 영접할 경우에는 특별공연을 하였고‚ 놀이 시작전에 하는 길놀이가 끝나면 안초목을 기리는 고사를 지내는 일도 있었다. 봉산탈춤은 더욱 발전되어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강령탈춤과 함께 황해도 춤의 최고 위치를 차지하였고 1967년에는 중요 무형문화재17호로 지정되었다. 원숭이는 제4과장의 신장수춤에 등장한다. 신장수가 가지고 등장하는 짐 속에 원숭이가 들어 있다. 신장수로부터 노장이 소무의 신을 외상으로 사자 신장수는 원숭이를 일종의 외상수금원의 역할을 맡겨 신발값을 받아오도록 시킨다. 그러나 원숭이가 돈을 받아오지 못하고 노장으로부터 장작전으로 돈을 받으러 오라는 편지를 신장수는 받게 된다. 장작찜을 당할까봐 두려워한 신장수는 원숭이와 함께 급히 무대로부터 퇴장한다. 외상값을 받으러 간 원숭이는 다른 탈놀이에서처럼 소무에게 음란한 동작을 연출하여 노장의 음란한 성격으르 폭로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한국의 탈춤(이두현‚ 일지사‚ 1979) 해학과 익살의 탈(한국박물관연구회 엮음‚ 문예마당‚ 1999) 한국의 전통춤(정병호‚ 집문당‚ 1999) 조선민속탈놀이연구(김일출‚ 한국문화사‚ 1998) 한국가면극(이두현‚ 서울대‚ 1994) <유사관련용어> 가면극‚ 노장‚ 신장수‚ 강령탈춤‚ 해주가면극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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