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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규필문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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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황성규필문자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황성규(黃聖?) 호는 석강(石岡)이다. 1886년 11월 5일에 나서 1953년 5월 11일에 卒하니 향년 72세이다. 석강이라는 호 보다는 `황노인(黃老人)` 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알려져서 `黃(황)노인글씨` `黃노인 그림`이라고 하면 황성규 작품으로 더 잘 통한다. 석강은 기골이 장대한 6척거구(六尺巨軀)였다. 품성(稟?)은 온순하기 그지없어 남에게 싫은 소리 할 줄 모르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들 하였다. 石岡은 일생일업(一生一業)‚ 강원고미술사(江原古美術史)에 길이 남을 민화가(民畵家)의 제일인자였고 민화의 창안자였다. <문자도> 민화의 한 종류로 한문자와 그 의미를 형상화한 그림. 글자의 의미와 관계가 있는 고사나 설화 등의 내용을 대표하는 상징물을 자획(字畵) 속에 그려넣어 서체를 구성하는 그림으로 대개 병풍 그림으로 그려졌다. 18세기 후반부터 시작하여 19세기에 이르러 민화와 함께 널리 유행하였다. 민간에서는 꽃글씨라고도 하며‚ 한자 문화권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조형예술로서 한자의 의미와 조형성을 함께 드러내면서 조화를 이루는 그림이다. 민화에 등장하는 문자도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첫째 유교적 윤리관과 삼강오륜(三綱五倫)의 사상이 반영된 효(孝)·제(?)·충(忠)·신(臣)·예(禮)·의(義)·염(廉)·치(?) 등 여덟 글자를 희화(戱畵)하여 그린 그림으로 효제도(孝?圖) 또는 팔자도(八字圖)라고 한다. 즉 유교의 도덕강령으로 인(仁)의 근본이며 군자가 행해야 할 행동지침인 8가지 덕목을 가리키는 글자에 이와 관련된 이야기나 동식물을 곁들인 그림을 말한다. 보통 8폭 병풍으로 만들어 집안을 장식하고 그 덕목을 되새기는 용도로 사용했다. 둘째 용(龍)·호(虎)·구(龜) 등의 글자를 이용한 수호적 상징문자도로‚ 고대 사신 사상과 애니미즘‚ 풍수사상을 반영한 그림이다. 이는 풍요·복·장수 등 현세의 평안을 희망하는 그림이다. 셋째 부귀(富貴)·수복강녕(壽福康寧)·다남(太男) 등의 글자를 이용한 길상 문자도로 염원이나 꿈 등을 획이나 글씨로 표현하여 현세의 행복‚ 장수‚ 안락을 희망하는 그림이다. 특히 수와 복자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주로 각종 생활 용품의 문양으로 사용되었는데‚ 부엌과 안방에 많이 쓰여 생명과 생활에 꼭 필요한 글자로 인식했다. 그밖에도 구름과 용으로 꾸민 운룡문자도(雲龍文字圖)와 바람과 호랑이로 꾸민 풍호문자도(風虎文字圖)‚ 용·잉어·새우·대합 등으로 꾸며 어변성룡(魚變成龍)과 하합상하(蝦蛤相賀)의 뜻을 나타낸 충자도(忠字圖) 등이 있다. 문자도는 궁중의 장식문양뿐만 아니라 불교나 도교의 장식문양에 치면 실용성과 예술성을 겸할 수 있다. 중국 한(漢)나라 때부터 만들기 시작하여 당(唐)나라 때에 널리 사용되었다. 한국에서는 686년(신문왕 6)에 일본에 금은 ·비단과 함께 수출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에도 여러 문집 가운데 병풍에 관한 기록이 많이 있음을 보아 사대부의 가정에서 널리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전기의 작품은 전하지 않으나‚ 중기 이후부터 후기에 걸쳐 그림과 수를 놓은 병풍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수병풍(繡屛風)의 현존 유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정명공주(貞明公主:1603∼1685)의 신선도(神仙圖) ·산수도(山水圖)‚ 현종(顯宗:1660∼1674)이 발기(跋記)하였다는 서왕모도(西?母圖) 등이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10폭과 8폭 또는 12폭짜리도 많이 이용된다. 이 밖에도 6폭 ·4폭 ·2폭의 것이 있으며 2폭의 것은 속칭 가리개라고 불린다. 또 머리맡에 치는 침병(枕屛)‚ 한 주제의 그림만으로 꾸민 왜장병(倭粧屛)‚ 여러 주제의 작은 그림이나 글씨 ·탁본 등을 붙이거나‚ 기타 도장 등을 찍어 꾸민 백납병(百納屛)‚ 수를 놓아 꾸민 수병(繡屛) 등이 있다. 왜장병은 일본에서 전하여 왔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이 밖에 특수한 것으로 궁전에서 용상 뒤에 치는 일월병(日月屛)이 있다. 이는 흔히 쓰이는 산수화 ·화조 등의 그림으로 꾸미는 것이 아니라‚ 해와 달에 십장생(十長生)을 당채(唐彩)한 것으로‚ 간혹 해와 달은 놋쇠로 만들어 붙이는 경우도 있다. 수병풍은 회화성이 있는 그림이면 어느 것이나 주제가 될 수 있다. <참고문헌> 두산세계대백과 http://www.contest.co.kr/2001/qvp08/public_html/cc/c5.html 강원의 美 과 일반서민들의 일상생활에 사용하던 문양들을 회화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려 당대 회화 발전에도 큰 역할을 했다. 제작기법으로는 붓을 사용하는 것 외에도 가죽붓을 재빨리 구사하는 혁필화(革筆畵) 기법‚ 인두를 불에 지져서 그리는 낙화(烙畵) 기법이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회화성이 더 강조되기도 했는데 글자의 의미보다 도안적인 장식성에 치중하여 때로 문자의 형태가 무시된 상태로 그려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문자도의 생산은 계속되며‚ 사회변화에 따라 혁필화로 형식이 변화되어 이어지고 있다. < 병풍 屛風> 본래의 구실은 바람을 막는 것이었으나‚ 현대에는 그림이나 자수 ·글씨 등을 감상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경향이 더 짙어졌다. 접거나 펼 수 있게 만들어 방안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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