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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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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수저집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수저를 넣어두는 주머니. <유래 및 발달과정> 먹는 일에 도구(道具)가 필요하게 되었던 일은 제법 오래 전부터이다. 오늘날처럼 수저를 이용하여 음식물을 먹게 된 일도 까마득한 옛일이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에서 뼈로 만든 숟가락이 출토되었고‚ 낙랑(樂郞)의 옛무덤에서는 청동제 숟가락과 함께 늙은 아버지에게 숟가락으로 무엇인가를 공양하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옻칠을 한 상자가 발견되었다. 1971년에 발굴된 충남 공주의 백제 무녕왕릉(武寧?陵)에서도 청동으로 만든 숟가락과 젓가락이 출토되었다. 이렇듯 오랜 시대부터 사용되어진 수저에 조선시대의 사람들은 수(壽)‚ 혹은 복(福)‚ 또는 쌍 희(囍)자를 문양으로 새겨 사용했다. 이런 숟가락을 사용하여 음식물을 먹는 것은 오래 살고도 복되며‚ 기쁜 나날이 계속되리라는 소박한 바램이 거기에 담겨져 있음이다. 즉‚ 밥이나 국을 먹은 게 아니라 수(壽)와 복(福)을 먹었던 것이다. 수와 복을 먹는 수저이므로 이는 귀한 것이니 함부로 내굴릴 수 없는 까닭에 이를 잘 보관해 둘 그릇이나 주머니가 필요하였다. 대개는 대나무의 단면이나 속을 판 나무토막을 이용하여 간결한 형태의 수저통이 만들어졌다. 이 외에 천을 이용하여 만든 수저주머니가 있었다. 이러한 수저주머니는 옛날 선비들이 과거보러 갈 때나 나들이로 길을 떠날 때 쌈지에 자기의 수저를 싸가지고 간 데서 연유하였다고 한다. 이 후로 집안의 여인들은 고운 비단에 여러 가지 문양의 수를 놓아 바느질해서 안방에 걸어 두기도 했다. 시집오는 새색시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혼수품목이 되었으며‚ 십장생문양을 수놓은 수저집에 은 석 냥 반으로 수저를 만들어 시부모님께 폐백용으로 썼다고 한다. 이 때의 도안은 십장생도(十長生圖)‚ 평생도(平生圖) 등의 문양을 즐겨 썼으며‚ 수실의 색도 중간색으로 하여 차분한 느낌이 들게 하였다. 그러나 부부가 쓸 수저집에는 원앙‚ 물오리‚ 거북‚ 봉황 등을 쌍으로 하여 부부의 금실을 상징하고‚ 어린 새끼들을 주위에 수놓아 자손의 번창과 오복(五福)을 기원하였다. 수저집의 뒷면은 되도록 간단한 길상(吉詳)문자를 수놓아 창호지로 배접‚ 공들여 바느질했다. <참고문헌> http://home.hanmir.com/-123go/museum/9010.htm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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