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탕기

추천0 조회수 76 다운로드 수 1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탕기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일반적 형태> 유제로 만들었으며 면기와 유사한 형태이나 굽이 낮다. 준경묘 제례용 유물로 제례 때 탕을 담는 그릇이다. <준경묘(濬慶墓 : 강원도기념물 제43호‚ `81. 8. 5 지정)> 이 묘는 미로면 활기리에 있으며 1981년 8월 5일 강원도기념물 제43호로 지정 되었다. 이 묘는 조선 태조의 5대조이며 목조의 부(父) 양무의 묘로서 1899년에 영경묘와 같이 묘소를 수축하여 제각‚ 비각을 건축하고 구거지에 목조대왕 구거지 비각을 건축하였다. 특히 이 일대는 울창한 송림으로 되어 있어 원시림의 경관을 여기서만 구경할 수 있는 산자수려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전주이씨 실묘로는 남한에서는 최고의 시조묘로 매년 4월 20일에 전주이씨 문중 주관으로 제례를 지낸다. 1984년 8월에 삼척군에서 영경묘와 함께 5천 3백여만원을 투입하여 제각‚ 비각‚ 재실‚ 홍살문 등을 일제히 보수하였다. <목조구지(穆祖舊址)와 양묘재(兩墓齎)>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5대조인 양무(陽茂)와 목조(穆祖)인 이안사(李安社)가 살던 옛터로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耆里)에 있으며‚ 활기리 노동(蘆?)에는 준경묘(濬慶墓)가 있고 동산리(東山里)에는 영경묘(永慶墓)가 있다. 활기동에 있는 목조의 구지(舊址)에는 돌담의 잔적이 남아 있고 또 샘물이 있으니 그것을 택대(宅垈)‚ 택전(宅田)‚ 택정(宅井)이라 하더니 이성계가 등극(登極)한 뒤부터는 왕대(?垈)‚ 왕전(?田)‚ 왕정(?井)이라 불렀다 한다. 이성계의 고조인 이안사가 완산(完山‚ 현 全州)에서 살다가 기녀(??) 때문에 산성별감(山城別監)을 피하여 그를 따르는 170여명과 함께 이 곳 삼척의 산골 활기리까지 이주하여 살다가 1년 뒤에 부친상을 당하여 고려 고종 13년(1231)에 노동에 장사지내고 또 모친이 사망함에 동산리에 장사지냈다. 활기리 구지를 중심으로 남쪽으로 3km 지점 노동에는 준경묘(濬慶墓)가 있고 북쪽으로 2.5km 지점인 동산리에는 영경묘(永慶墓)가 있다. 이안사(李安社)는 양친을 안장한 뒤 백우금관(百牛金棺)의 전설을 남기고 추종자 170여명과 함께 다시 함길도(咸吉道‚ 지금의 함경도) 덕원군(德源郡) 용주리(湧?里)로 이주하여 여진족(女眞族)의 천호(千戶)벼슬을 하였다는 기록이 용비어천가(龍飛御?歌) 주석에도 남아 있으며 이 곳 삼척을 피하여 함경도로 옮겨 간데 대하여는 전주에 있던 산성별감이 다시 삼척에 왔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전설로는 처가집 백우(白牛)를 잡아 산신제 제물로 쓰고 소를 돌려 줄 길이 없어 도피하였다는 설도 있다. 조선 말엽 고종 을해(1899년)에 활기구지에 양묘재실(役書員) 2인‚ 수호(守護) 4인‚ 고직(庫直) 1인‚ 산직(山 直) 4인‚ 대청직(?廳直) 1인‚ 지공원(支供員) 2인. ⑨ 제향을 매년 청명일에 실행하는데 준경묘 헌관은 삼척군수‚ 영경묘 헌관은 강릉 군수‚ 전사관(典祀官)겸 대축 울진군수‚ 평해군수. 활기리(?耆里) 지명에 대하여 고찰해보면 황기(皇基)가 활기(弓基)로 다시 활계(簧溪 )로 와전되어 오다가 조선말 고종때 이중하(李重?)가 양묘재사를 영건하고 지금 불리우는 활기(?耆)로 고쳤다 한다. 백우금관(百牛金棺)의 전설과도 같이 도승의 예언대로 준경묘를 쓰고 5대만에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 5백년 창업의 태조로서 이성계가 왕위에 등극하였다. 태조 2년에는 삼척군이 목조의 외향(?鄕)이며 선대의 묘가 안치되어 있는 곳이라 하여 군에서 부로 승격시키고 홍서대(紅犀帶)를 하사하였으며 현재도 삼척김씨 재실 내 운한각(雲漢閣)에 보관되어 전한다. <참고문헌> 삼척시지 兩墓齋室) 및 비각과 목조사적비(穆祖事蹟碑)를 세우고 양묘에 수호군(守護軍)을 상주시켜 묘를 수호케 하고 청명(?明)날에 제향(祭享)을 올렸으며 양묘수호절목(節目)은 다음과 같다. ① 양묘 수호 등절(等節)은 본도 관찰사‚ 본군 군수 일체구검사(一體句檢事) ② 관찰사는 매년 1차 봉심(?審) 후 장례원(掌禮院)에 보고(報告) ③ 지방관은 2월과 8월에 각각 예에 의하여 봉심하고 장례원과 종정원에 보고 ④ 봉심사(?審事) 매월 1일‚ 5일‚ 10일‚ 15일‚ 20일‚ 25일‚ 30일. ⑤ 매년 한식(寒食)전과 입동(立冬)전에 재관(齋官)이 수호군을 인솔하고 좌청룡(左 靑龍)‚ 우백호(右白虎)로부터 동구(?口)에 이르기까지 식목(植木) ⑥ 매년 7월에 벌초(伐草) ⑦ 매년 10월 둘레 표계(標界)까지 초목(草木)을 베어 산불을 방지 ⑧ 수직원(守直員) 역서원(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