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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면하단 관우절목(東面下端 官牛節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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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동면하단 관우절목(東面下端 官牛節目)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동하면고문서는 조선시대 동래부 동하면(지금의 해운대구 일원)의 지방자치행정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서로서‚ 이 지역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소상하게 알려줄 뿐 아니라‚ 조선후기 지방행정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동하면 고문서로서 보존되어 온 자료는 <동하면호적대장(東下面戶籍臺帳)> 1책을 포함 모두 30책이다. 동래부사가 東萊官의 農牛가 돌림병으로 많이 斃死하여 농사에 지장이 있음을 알고‚ 農牛 51頭를 官費로 사서 관내 각 촌에 나누어 사육‚ 사용하게 한 절목‚ 官牛 사육의 책임과 관리지침이 포함되어 있다. 東下面에서는 재송‚ 좌동‚ 우동‚ 중동‚ 해동 각리에 한 마리씩 배당되었는데‚ 말미의 기록에 의하면 중동을 제외한 네 마을에 다시 4마리의 송아지가 생산되어 모두 9頭가 되었음을 명기하고 있다. 道光 22년의 東下面牛稅畓改量案에 의하면‚ "英祖 丙戌年(1766)에 승지 ?公이 이곳에 부임하였는데 그 舊政으로 農牛를 官給한 게 있고‚ 그 뒤에 尹公 李公 두 분이 소를 팔아 쌀을 만들고 쌀을 팔아 토지를 만들어 牛稅畓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東萊鄕廳考往錄에 의하면 "乾隆 44년 己亥年(1779)에 官牛斥賣作錢取殖防給還耗事로 鄕廳의 稟目이 1장 있다"고 하였고‚ 또 "건륭 46년(1781)의 <牛價米區處節目> 1권이 있었다"고 하였다. 英祖 乙酉年에 府使로 재임한 이는 ?必履이고‚ 건륭 44년 무렵 동래부사로 부임한 이는 李致中(1778-1780)‚ 李文源(1780-1780)‚ 尹師國(1780-1781)등이다. 尹二月이 든 乙酉年은 서기1765년이기에 연대를 확정할 수 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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