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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친왕서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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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의친왕서첩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의친왕의 서첩 서첩에는 우리 선현들의 사생활의 실태를 찾아 볼 수 있는 중요한 사회사의 자료이다. 서법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운필하여 바쁜 가운데 비필난초(飛筆亂草)로 휘두른 것으로 그 필치는 유려하고 창달하여 보는 사람들의 심목을 흔결(欣決)케 하는 감동을 지니고 있다. 아무런 제약과 의도적인 작태가 없는 서간의 서품은 그것이 글씨의 본바탕이며 작가의 개성을 그대로 살린 작품으로 살아 있는 서예사이다. 또한 조선시대 서간형식의 변천과 서압(署押)의 양상을 연구할 수 있어‚ 역사‚ 민속‚ 사회사‚ 서법연구 등 여러 측면에서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의친왕은 고종의 아들로 호는 만오(晩?). 초명 평길(平吉). 이름 이강(李堈). 고종의 다섯째 아들. 어머니는 귀인(貴人) 장씨(張氏). 1891년(고종 28) 의화군(義和君)에 봉해지고‚ 1894년 보빙대사(報聘?使)로 도일하여 청일전쟁의 승리를 축하하고‚ 이듬해 6개국 특파대사(特??使)로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을 차례로 방문했다. 1899년(광무 3) 미국에 유학‚ 의친왕에 봉해졌으며 귀국하여 적십자사 총재가 되고‚ 1919년 대동단(?同團)의 최익환(崔益煥) 등과 협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탈출을 기도‚ 만주 안둥[安東]에서 발각‚ 송환되었다. 그 뒤 여러 번 일본 정부로부터 도일을 강요받았으나‚ 거부하고 끝까지 배일(排日)정신을 지켰다. 이 의친왕의 서첩은 7언 율시로 서체는 행.초이다. 대담하고 유려한 필세가 인상적이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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