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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창운수재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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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오세창운수재편액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오세창의 운수재 편액 편액(扁額)은 목판‚ 종이 또는 비단 등에 글씨나 그림을 새긴 것이다. 대부분 가로로 길죽하여 횡액(橫額)이라고도 하고‚ 현판(懸板)이라고 부른다. 편(扁)은 서(署)의 뜻으로 문호 위에 제목을 붙인다는 말이며‚ 액(額)은 이마 또는 형태를 뜻한다. 즉‚ 건물 정면의 문과 처마 사이에 붙여서 건물에 관련된 사항을 알려 주는 것으로 중국 진(秦)나라 때 건물 명칭을 표시한 것을 서서(署書)라고 한 것이 편액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쓰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는 사찰 건물은 물론 도성과 문루‚ 궁궐 전각‚ 지방관아와 향교·서원·일반주택에까지 붙여졌다. 여기에 쓰이는 한자는 전서와 예서·해서·행서·초서 등 매우 다양하며‚ 요즘에는 한글로 된 편액도 많아졌다. 건물의 얼굴이므로 건물 격식에 어울리는 글씨와 장식을 더한다. 글씨의 경우는 당대 명필과 고승·문인의 것이 대부분이나‚ 더러는 옛 선현의 글씨를 모아 만들기도 하고 활자체나 특별히 만든 글씨로 장식하기도 한다. 글씨는 금니와 은니·먹·분청·호분 등으로 쓰고‚ 틀은 무늬와 색채를 넣어 주련(柱聯)과 함께 건물의 중요한 장식 수단이 된다. 이렇게 편액은 건물에 멋을 내는 수단임과 동시에 건물 명칭과 내력‚ 역사와 인물‚ 일화 등을 담고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오세창은 조선 말기의 독립운동가‚ 언론인‚ 서예가이다. 본관은 해주(涇州)‚ 호는 위창(葦滄)이며‚ 본명은 중명(仲銘)이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다.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886년 박문국(博文局) 주사로 공직생활을 시작하여 <한성순보(漢城旬報)> 기자를 겸하다가 1894년 군국기무처 총재비서관·농상공부 참의(參議)·우정국 통신원국장을 역임하였다. 1897년 일본 문부성(文部省)으로부터 외국어학교 조선어 교사로 초청 받아 1년간 교편을 잡았다. 귀국 후 1902년 갑신정변으로 일본에 망명한 바 있다. 양한묵(梁漢默)·손병희(孫秉熙)의 권유로 천도교 신자가 되었다. 1906년 귀국‚ 만세보사(萬歲報社)와 대한민보사(?韓民報社) 사장‚ 대한협회(?韓協會) 부회장을 지냈다. 1919년 3·1운동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 후 체포되어 3년 간 옥고를 치렀으며‚ 그 후 서화가의 친목기관인 대한서화협회(?韓書畵協會)를 창립‚ 예술운동에 진력하였다. 전서(篆書)와 예서(隸書)에 뛰어났으며 서화(書畵)의 감식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었다. 오세창의 운수재(雲樹齋) 편액은 전서체로 기품있는 장중함이 담겨 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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