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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작‚ 성반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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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성작‚ 성반세트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성작 : 전례용구의 하나로 미사 중 성찬전례 때 포도주를 봉헌하고 성혈로 축성된 후 받아 모시기 위해 사용되는 축성된 잔. 성반 : 미사 중 축성될 제병‚ 특히 사제용 제병을 놓아두는 전례 용구. <유래 및 발달과정/역사> 김수환 추기경이 사용하던 성작과 성반 세트이다. 성작 : 모든 전례 용품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성작은 성서에 유일하게 언급되어 있는데 예수는 제자들에게 “당신들도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실 것”이라고 하였으며(마르코 10:39)‚ 최후의 만찬 이야기에서도 예수가 제자들에게 “내 계약의 피를 마셔라”고 한 포도주를 담은 잔이 나온다(마르코 14:23-24‚ 루가 22:17-18‚ Ⅰ고린도 11:25) 또 게쎄마니에서 예수는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라고 기도하였는데(루가 22:41‚ 마태 26:42‚ 마르코 14:36)‚ 이 모든 성서구절들이 하나로 모아져 현재 성찬 전례에서 성변화를 위한 기도로 사용되고 있다. 전례용 성작은 고대의 술잔에서 변형‚ 발전되었다. 초기 교회 때 사용된 성작은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카타콤바에 그 당시의 성작이 묘사되어 있으며‚ 테르툴리아노의 작품에도 성작을 의미하는 라틴어 ‘calix’가 언급되어 있다. 현재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는 성작은 500년경의 것으로 예술적 문양이 뛰어난 비잔틴식의 ‘안티오키아 은 성작’(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이다. 6세기 경에는 넓은 잔과 그것을 받치는 깔대기 모양의 받침과 중간 마디가 있는 대로 구성된 성작의 고전적인 형태가 정착되었다‚ 또 7-8세기 이후에는 마실 때 편리하도록 주둥이가 달린 커다란 성작들이 등장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신자들이 성체성사 성작에 직접 입술을 대고 성혈을 받아 모실 때 흘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12세는 큰 잔 형태의 성작이 나타나고 13세기부터는 성작에 부착된 손잡이가 점차 사라지면서 중간 마디의 대 부분이 손잡이 기능을 대신하게 되었다. 14-15세기의 성작은 고딕식의 가늘고 긴 형태로‚ 깔대기 모양의 잔과 고딕식의 꽃잎 문양이 양각되어 있는 받침 부분과 십자가가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후 17-18세기 즉 바로크 시대에는 컵 모양의 잔부분과 금은 세공이나 상아를 박아 넣는 세공법을 이용해 장식한 대부분 그리고 무겁고 튼튼한 받침부분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성작은 고대의 성작처럼 크고 장식 없이 단순한 술잔 모양으로 제작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잔 부분이 강조되면서 중간 마디 부분은 보다 깨끗하고 조화로운 선을 유지하기 위해 사라지는 추세이다. 재료를 살펴보면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으로 폭이 넓고 평평한 접시 모양에 테두리가 장식된 원반 형태가 주로 사용되었지만 종종 색다른 형식의 성반도 제작 사용되었다. 11세기 비잔틴식 성반에서는 6개의 꽃잎장식과 유약을 이용한 색채가 돋보인다. 후기 비잔틴시대에는 구리 성반이 사용되었고‚ 이후에 특히 러시아에서는 손잡이가 달린 성반이 후기 비잔틴 시대에는 손잡이가 달린 성반이 등장하여 사용되기 시작했다. 현재 동방교회에서는 손잡이가 달려 있는 지름 40cm의 넓고 큰 모양의 성반이 사용되고 있다. 서방교회-성반에 관한 언급은 많지만 초기의 정확한 형태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여러 가지 종류의 성반이 구분되어 사용되어 왔다. 옛 성반들은 이따금 유리나 목재로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금이나 금박을 입혀 만들어졌고‚ 보석을 이용하여 꽃문양이나 십자가‚ 물고기‚ 양‚ 바다괴물의 입 속에 던져진 요나 등의 예언자들 등의 그림들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그러다 카롤링거 왕조 때부터 점차 간소화되고 단순화되면서 현재 사용되고 있는 성반과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된다. 9세기에는 팔각형의 성반과 성작이 사용된 바 있으며‚ 10세기 후반이후에는 내부가 파인 둥근 접시 모양에 하느님의 어린 양 등이 묘사된 상당히 작은 성반이 등장한다. 또 대표적인 초기 로마네스크식 성반은 5개의 잎이 달린 꽃과 보석으로 장식된 성반이었다. 그 후 점점 많은 수의 잎이 달린 꽃문양이 그려진 성반이 등장한다. 후기 로마네스크식 성반은 십자가가 달리고 도금을 한 둥근 은 성반이 주로 사용된다. <일반적 형태‚ 특징> 성작-높이:17.2cm‚ 최대지름 : 10.8cm 성반-지름:15cm 성작은 윗부분의 잔과 중간 마디가 있는 대‚ 그리고 받침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금‚ 은‚ 구리‚ 주석‚ 청동 등으로 제작할 수 있는데 잔의 안쪽은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도금을 한다. 쉽게 깨어지거나 수분을 흡수하거나 썩는 재료로 만들어서는 안 되며 대는 단단하고 품위 있는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성반은 둥글고 평평하면서도 약간 오목한 접시 모양으로‚ 주로 성작과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다. 본소장품의 성작은 성작은 복합금속 재질에 금도금한 것으로‚ 본체 표면이 타날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본체와 받침을 연결하는 대 부분에 7개의 자수정이 부착되어 있다. 성반도 복합금속 재질에 금도금한 것으로 둥글고 약간 오목한 접시 모양이며 민무늬이다.들은 나무로 성작을 만들어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유리로 된 것도 사용하였다. 초기 교회와 중세기 전반에 걸쳐 성작은 유리‚ 나무‚ 구리‚ 청동‚ 수정‚ 마노 등 여러 가지 재질로 제작되었으나 콘스탄틴 대제 시대에 이르러서는 금이나 은으로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1310년 트리어 교회회의에서 모든 교회는 적어도 은으로 된 성작과 성반에 도금을 하여 사용하도록 규정하였으나 1969년 이후부터는 재정이 어려운 경우에 다른 재료를 허용하고 잔의 안쪽만 도금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성반 : 동서방 교회를 통하여 성반은 형태와 기능면에서 많은 변화를 거듭해 왔는데 그 변화의 경로는 동서방 교회 모두 거의 비슷했다. 동방교회-주로 원반형태의 성반을 사용했으며 오래된 유물이 많은편이다. 일반적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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