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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DEGETRIA의 성모(인도자 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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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HODEGETRIA의 성모(인도자 성모)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벽화나 모자이크‚ 목판 등에 예수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성인‚ 천사 또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신비들을 그린 그림. <유래 및 발달과정> 그리스도교에서 이콘화는 구약성서·신약성서 및 이를 보족(補足)하는 외전(?典) 및 성인전(聖人傳)을 전거(典據)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초기 초대교회 시대에는 죽은 영혼의 구원(救援)을 기구(祈求)하는 것을 도상에 의탁하였다 할 수 있고‚ 4세기의 ‘교회의 승리’ 이후에는 신(神)인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성스러운 우주의 영광을 구체적으로 나타냄과 동시에 도상으로써 민중을 교화(敎化)하려는 목적으로 급속하게 발전하였다. 또한 5세기 전반에 성모가 ‘신의 어머니’로서 공식으로 인정된 이래‚ 성모 관계의 도상도 발전하여 갔다. 6∼7세기경까지는 ‘그리스도의 승리’와 성모의 영광을 찬미하는 도상은 많았으나‚ 수난(受難)에 관한 것은 거의 없었다. 10세기에 이르러서야 동·서 그리스도교 사회에서 수난에 관한 도상이 발달하기 시작하여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 ‘성모의 탄식(피에타)’ 등의 도상화가 점차 늘어나고‚ 이러한 현상은 고딕 말기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여 다시 바로크 미술로 이어졌다. 전체적으로 보아서 그리스도교의 이콘화가 정점(頂點)에 이른 것은 로마네스크 및 고딕 시대(특히 12∼13세기)로‚ 신이 지배하는 초자연 및 자연의 모든 질서가 도상화되었다. 그것은 신의 보좌인 천계(?界)로부터 인간 및 동물이 사는 지계(地界)에 이르는 공간의 질서뿐만 아니라 천지창조가 비롯되는 구약시대로부터 신약시대‚ 이에 이어지는 성인시대(聖人時代)‚ 나아가 미래의 ‘최후의 심판’에 이르는 장대(壯?)한 역사의 질서가 표현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사회에서 이런 도상표현이 긍정되어 온 것은 아니다. 예배의 대상을 도상으로 표현하고‚ 이것을 숭배한다는 것은 구약시대 이래 우상숭배라 해서 금해 왔는데‚ 이러한 전통은 초기 초대교회 때부터 종종 표면화된 형태로서 존속되어 왔다. 비잔틴 사회에서 있었던 8∼9세기의 성상파괴운동(聖像破壞運動)은 이러한 전통의 과격한 표현이며‚ 그 후 동방(東方) 그리스도교 사회에서도 환조(丸彫)의 종교상(宗敎像)은 그 3차원적 실체성 때문에 부정되어 왔다. 유럽에서는 성(聖) 베르나르두스(1091∼1153) 및 그 교리를 계승한 시토수도회(修道會)에서는 도상을 부정하는 경향이 강하였고‚ 근대에도 16세기 이후의 프로테스탄트 각파가 도상미술에 대해 부정적 또는 소극적이었으며‚ 현대의 추상파 종교미술 작가들도 이러한 경향을 계승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럼에도 초대 교회 시대 이래 도상미술은 끊임없이 발전하여 왔다. <일반적 형태‚ 특징> 가로 53.7cm‚ 세로 68cm(액자포함) 본 소장품은 <인도자 성모>를 주제로 다룬 이콘화이다. <길의 성모>로도 부르는데‚ 그 이유는 우리의 신앙을 아기예수에게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성모 마리아는 한 팔에 예수님을 안고 있고‚ 다른 손으로 아기예수를 가리키고 있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예수는 몸을 곧바로 세우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아기예수는 왼손에 말씀을 상징하는 양피지 두루마리를 들고 있고 오른손으로는 강복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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