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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착한 사마리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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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우정(착한 사마리아 사람)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기원전 721년부터 아시리아가 사마리아 지역을 침공한 후 대량 이주 정책을 펼쳤을 때 포로로 잡혀가지 않은 유대인들의 후손들인 사마리아 인들의 의미를 되새긴 템페라화. <유래 및 발달과정> 역사적으로 사마리아인들의 기원은 기원전 721년 아시리아의 사르곤 2세(Sargon Ⅱ‚ 기원전 722-705)가 사마리아를 함락하고 당시의 전형적인 식민지 대량 이주 정책에 따라 27‚290명에 달하는 거주민들을 포로로 끌고 갔으며‚ 메소포타미아의 쿠타(Cuthah) 지역 이방인들을 사마리아 지역으로 집단 거주시킨 것에서 찾을 수 있다. 페르시아 시대부터는 혼혈이 된 사마리아인들과 바빌로니아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유대 민족 사이의 갈등이 예루살렘의 성벽 건설과 연관하여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편 이집트의 엘레판틴(Elephantine)에서 발견된 기원전 5세기에 기록된 파피루스에는 예루살렘과 함께 사마리아의 성전 재건을 위해서 재정적인 지원을 요청하는 편지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이미 이 두 민족은 별개의 성전을 갖고 있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사마리아인들은 이집트로 향하던 알렉산더에게 8‚000명에 달하는 군사들을 모집하여 제공하였지만‚ 알렉산더가 이집트에 머물러 있을 때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가 임명한 사마리아의 총독을 살해하였다. 그 결과 마케도니아 군대가 사마리아를 파괴하면서 많은 주민들이 세겜으로 피신하였고‚ 이때부터 세겜은 본격적인 종교적 중심지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신약 시대에 들어 사마리아인들은 세겜 근처의 시카르(Sychar)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신약성서에서 사마리아인들은 진정한 이굿이나 고침받은 10명의 나병 환자들 중 감사할 줄 아는 사마리아인 등 긍정적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이스라엘 백성 중의 길 잃은 양들보다 못한 민족‚ 또는 사마리아인 마술사 시몬 등 여전히 유대 민족과는 차별되는 집단으로 부정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일반적 형태‚ 특징> 가로 25cm‚ 세로 25cm 본 소장품은 우정(착한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제목의 템페라화이다. 코발트 불루의 바탕화면 위에 간결한 선적인 요소로 표현했으며‚ 전체적으로 저채도의 세련된 색구성을 이루고 있다. 흰색이 강조색의 역활을 하여 자칫 지루할 수 있는 화면을 생동감있게 끌어내고 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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