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500나한

추천0 조회수 40 다운로드 수 0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500나한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및 상세설명> 불교에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성취한 500명의 아라한을 말하며 오백비구(五百比丘)·오백상수(五百上首)라고도 한다. 아라한과는 소승불교에서 아라한이 이른 최고의 경지로서‚ 이를 깨달은 이들은 더 이상 생사윤회의 흐름에 태어나지 않으므로 최고의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하며 매우 덕이 높은 성자로 추앙받는다. 이들 오백나한에 대하여는 여러 경전에 기록이 있는데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이나 《십송률(十誦律)》에 의하면 석가가 중인도 교살라국의 사위성(舍衛城)에서 500명의 나한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고 하며‚ 《흥기행경(興起行經)》에는 매월 15일 500나한을 위한 계(戒)를 설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 《법화경》의 오백제자수기품(五百弟子授記品)에서는 석가가 500명의 나한을 위하여 특별히 수기(授記)를 베푸는 모습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오분율(五分律)》에는 석가가 열반한 직후 중인도 마가다국(摩伽陀國) 왕사성(?舍城)의 칠엽굴(七葉窟)에서 500명의 나한이 결집하여 불전(佛典)을 편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제1결집을 오백결집이라 부른다. 석가 열반 후 600년이 지난 뒤‚ 인도 서북경의 가습미라(迦濕彌羅)에서 열린 제4결집‚ 즉 비바사론결집(毘婆沙論結集)에서는 500명의 비구(比丘)가 참가하였는데 이들도 오백나한으로 받들어진다. 또 당나라 사람 도세(道世)가 지은 《법원주림(法苑?林)》에는 옛날 한 바라문이 학문을 좋아하여 항상 500상인의 동자를 가르쳤는데 그 500동자가 지금의 500나한이 되었다고 하고 또는 그때의 500상인이 지금의 500나한이 되었다고도 한다. 이처럼 오백나한이란 석가 생존시의 500명의 제자나 석가의 열반 후 결집한 500명의 나한이나 비구 등을 칭하는 데 두루 사용됨을 알 수 있다. 이들 오백나한은 한국·중국·일본 등지에서 특별한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중국 푸젠성[福建省] 서풍암(瑞豊巖)에는 오백나한원(五百羅漢院)이 있고‚ 저장성[?江省] 서암사(西巖寺)에는 철조(鐵造) 오백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일본 도쿄[東京]의 라칸사[羅漢寺]와 교토[京都]의 다이도쿠사[?德寺] 및 도호쿠사[東福寺] 등지에 오백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한국에는 대부분의 사찰에서 나한전(羅漢殿) 또는 응진전(應眞殿)이라는 전각에 조상(彫像)을 만들어 나한을 모시고 있다. 영천 은해사(銀涇寺) 거조암(居組庵)의 석조 오백나한상은 유명하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