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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경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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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가경통보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가경통보는 중국 청대(靑代)의 가경연간(嘉慶年間;1796∼1820)에 주조된 동전으로‚ 전면에 "가경통보(嘉慶通寶)"라는 면문(面文)이 대독(代讀)되어 있으며‚ 후면에는 만주자(滿?字) 2개가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바다조개의 일종인 자패(紫貝)가 화폐의 역할을 해오다가 춘추·전국시대에 농기구의 머리부분을 본 뜬 포화(布貨)·포폐(布幣)라 하는 청동화폐가 등장하였다. 또 이 시기에는 손칼모양의 도전(刀錢)‚ 원형전(圓形錢)과 의비전(蟻鼻錢)이 함께 사용되었다. 기원전 221년 진시황(秦?皇)은 가운데 구멍이 있는 원형의 반량전(半兩錢;반량은 12수(銖)로 1兩(24銖)의 반이라는 의미)을 유일한 화폐로 정하여 유통시켰는데‚ 이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국가 화폐의 기본적인 형태가 되었다. 전한(前漢) 무제(武帝)때에 만들어진 오수전(五銖錢)은 무게가 5수(0.659g)이고 앞면에 "五銖"의 면문(面文)이 있고‚ 모양은 원형에 사각구멍이 뚫려 있고 주위 윤곽선을 두른 것으로 중국돈의 기본형이 되었으며‚ 당(唐)의 개원통보(開元通寶)가 제정될 때까지 거의 중국의 표준화폐로서 통용되었다. 당의 고조(高祖)는 화폐제도를 정비하기 위해 무덕 4년(621년)에 오수전을 폐지하고 대신 개원통보(開元通寶)를 주조하여 기본적인 화폐로 삼았다. 이 시기부터 중국의 화폐는 중량에 따른 명칭은 없어지고 통보(通寶)‚ 원보(元寶) 또는 중보(重寶)라 불려지게 되었으며 전문(錢文)도 전서(篆書)에서 예서(隸書)로 변화하였다. 개원통보는 2銖 4루(루는 기장 10알의 무게)로 하고 10개를 1兩(24銖)이라고 정하여‚ 이후 1兩의 10분의 1을 1錢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는 중국화폐의 표준이 되었으며‚ 그 형태와 제법(製法)은 동아시아 각국의 기본이 되었다. 송대(宋代)는 상업이 활발하여 화폐경제가 상당히 발달했던 시대였으므로‚ 송원통보(宋元通寶)를 시작으로 송의 화폐는 그 명칭과 종류가 대단히 많으며 복잡하다. 교환매개물로서의 금‚ 은의 사용이 송대 후기부터 성행하게 되어 특히 원조의 원정에 의해 다량의 은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와 원조(元朝)에 이어 명조(明朝)에서도 은이 실제 교환매개의 주체가 되었고‚ 동전은 보조화폐의 역할만 하였다. 은(銀)은 지금(地金;제품을 하지 아니한 금)으로 사용되었는데 그 형태는 송대에는 정(鋌;편평한 장방형)‚ 법마형(法馬形;원형으로 좌우를 도려낸 저울추 모양)이었으며‚ 원(元) 이후 마제은(馬蹄銀;말발굽 모양의 은제 덩어리)이 되었다. 은이 실제 교환매개의 주체가 되었던 명조에도 10명의 황제가 각각 연호전(年號錢)을 주조하였는데‚ 특히 홍치 18년(1505)에선통원년에 선통통보(宣統通寶)가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청조 최후의 제전으로서 기원전 221년 진시황제에 의해 시작된 원형의 사각구멍이 뚫린 전통적인 동전은 이후 다시는 주조되지 않았다. 중국 고전이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것은 고려시대에 원의 지원보초(支元寶?)와 중통보초(中統寶?)가 합법 유통되었으며‚ 조선후기에는 당백전의 주조가 금지된 후 가경통보(嘉慶通寶)‚ 도광통보(道光通寶)‚ 동치통보(同治通寶) 등의 청전(?錢)이 통용되었다. 강화도조약 이후에는 일본상인에 의해 일본 1원은화가‚ 청국관리에 의해 마제은(馬蹄銀)이‚ 중국상인들에 의해 멕시코은화 등이 대량 유입되어 통용되었다. 특히 인천의 경우에는 일제강점기에 군수품 조달 목적으로 금속류를 수집‚ 보관하던 부평조병창(富平造兵廠)에 중국 고전이 대량 유입되었기 때문에 이 일대에서 많이 수집되었다. 만들어진 홍치통보(弘治通寶)는 주조법을 바꿔 성분에 아연을 많이 넣어 합금하였는데‚ 중국화폐 중 최초의 합금전(合金錢)이다. 대체로 명(明)의 제도를 이어받은 청(?)왕조는 화폐의 유통에 있어서도 은의 사용은 계속 이어지는 한편‚ 정부공인화폐라는 의미의 제전(制錢)이라 불리는 동전이 은의 보조로서 소액용으로 사용되었다. 제전은 역대황제가 국가의 권위를 보이는 상징으로서 주조했을 뿐이다. 북경 천도 후 발행된 화폐의 앞면은 한자(漢字)‚ 뒷면은 만주자(滿?字)로 주조국명(鑄造國名)을 표시했는데‚ 특히 건륭통보(建隆通寶)는 뒷면에 만주자와 아라비아자로 주조지를 표시하고 있어 앞면의 한자까지 포함하면 한 매에 세 가지의 문자가 사용되었던 것이다. 청말에는 광서통보(光緖通寶)에 이어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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