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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덕필 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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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조병덕필 서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개설> 서간은 일반 글과는 달리 말 대신 쓰는 글로 수신인이 있고 수신인과의 관계에 따라 적절한 예법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서간문이라는 형식이 생겨났다. 발신인(發信人)‚ 수신인(受信人)‚ 용건(用件)의 구성요소를 가지며‚ 이두로는 고목(告目)‚ 기별이라고 하고‚ 조선시대 이전부터는 우무‚ 유무‚ 글월이라 하였으며‚ 조선 후기에 와서 편지라는 말이 쓰였다. 순한문이나 이두문을 섞어 쓰는 한문서간과 순한글이나 한자를 섞어서 쓰는 언간(諺簡)이 있으며‚ 한글편지는 내간(內簡)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한문서간에는 수필과 평론의 구실을 하는 문학작품인 것도 있어 한묵(翰墨)이라는 명칭도 생겼다. 내용에 따라 문안(問安)‚ 평신(平信)‚ 하장(賀狀)‚ 위장(慰狀) 등으로‚ 용도에 따라 실용서간과 문예서간으로 나뉜다. 현대의 편지글에는 한문서간과 일본서간이 스며 있다. <작가> 조병덕(趙秉? 1800~1870)의 자는 유문(孺文)‚ 호는 숙재(肅齋)‚ 시호는 문경(文敬)‚ 본관은 양주(楊州)이다. 일찍이 홍직필(?直弼)과 오희상(吳熙常)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1852(철종3)년 음보(蔭補)로 지평이 되고‚ 1859년 경연관?이조참의를 거쳐 호조참판에 이르렀다. 동문수학한 임헌회(任憲晦) 등과 함께 한말의 거유(巨儒)로 칭해졌으며‚ 성리학자로도 이름이 높았다. 저서로 ?숙재집(肅齋集)?이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조병덕이 상을 당한 선생에게 올린 위로의 글이다. 며느리를 잃으신 슬픔을 어찌 이길 수 있겠는지‚ 부인 제사가 겨우 지났는데 또 다시 이런 일을 겪은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러워했다. 이어 지난번 글을 올리면서 찾아가 뵐 계획이었는데 새해 이후에도 못 찾아뵈었으니 답답한 마음 전할 방법이 없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先生前上書 省禮白 令愛閔氏婦喪變 不勝驚? 伏?慈愛隆渙 ?慟沈痛 何可堪勝 況伏念賢閤?人 祥期?過之餘 又有此意?貼 戚邵齡?懷 ?致損節 伏切憂慮 曷有其極 伏未審初? 服中道體若何 伏乞渙自寬抑 以慰遠誠 事勢所拘 末由?慰 其於憂? 無任下? 向者上書 計已入鑑矣 一自新歲以後 尙不得承聞諸節之詳 下懷慕鬱 ?何盡達 ?留後便 不備 伏?下鑑 上書 癸巳四月十八日 門人 趙秉? 上書 <기타참조> "편지-조선시대 사대부의 일상"‚ 순천대박물관‚ 2003. <참고문헌> "편지-조선시대 사대부의 일상"‚ 순천대박물관‚ 2003. "한국인물대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8.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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