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윤봉구필 서간

추천0 조회수 101 다운로드 수 2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윤봉구필 서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개설> 서간은 일반 글과는 달리 말 대신 쓰는 글로 수신인이 있고 수신인과의 관계에 따라 적절한 예법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서간문이라는 형식이 생겨났다. 발신인(發信人)‚ 수신인(受信人)‚ 용건(用件)의 구성요소를 가지며‚ 이두로는 고목(告目)‚ 기별이라고 하고‚ 조선시대 이전부터는 우무‚ 유무‚ 글월이라 하였으며‚ 조선 후기에 와서 편지라는 말이 쓰였다. 순한문이나 이두문을 섞어 쓰는 한문서간과 순한글이나 한자를 섞어서 쓰는 언간(諺簡)이 있으며‚ 한글편지는 내간(內簡)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한문서간에는 수필과 평론의 구실을 하는 문학작품인 것도 있어 한묵(翰墨)이라는 명칭도 생겼다. 내용에 따라 문안(問安)‚ 평신(平信)‚ 하장(賀狀)‚ 위장(慰狀) 등으로‚ 용도에 따라 실용서간과 문예서간으로 나뉜다. 현대의 편지글에는 한문서간과 일본서간이 스며 있다. <작가> 윤봉구(尹鳳九 1683~1768)의 자는 서응(瑞膺)‚ 호는 병계(屛溪)?구암(久菴)‚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1743(영조19)년부터 사과?진선?서연관(書筵官)을 거쳐 1760년 대사헌에 특별 임명되었으며‚ 1763년 지돈녕(知敦寧)에 이어 공조판서가 되었다. 한원진(韓元震)?이간(李柬)?현상벽(?尙璧)?채지홍(蔡之?) 등과 함꼐 권상하의 문하에서 공부한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의 한 사람으로서 호락논쟁(湖洛論爭)의 중심 인물로 꼽힌다. 그의 생애는 사회적?현실적 활동보다 심성론을 주로 한 성리학자로서의 입론(立論)에 치중했으며‚ 저술의 내용도 경전의 강의나 주석 및 성리설이 주를 이룬다. 저서로는 ≪병계집(屛溪集)≫이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이 서간은 오위(五衛)의 정6품 관직인 사과(司果)로 있을 때 어느 고을군수에게 보낸 것이다. 추위가 점차 매서워지는데 몸 건강히 잘 지내는 묻고‚ 듣는 바에 의하면 방백(方伯)이 순시하는 도중에 그 고을에서 오래도록 머물렀다 하는데 대접은 잘 하였는지 궁금해 하였다. 이어 부모님 묘소를 이장하려는데 혼자서는 하기가 어려우니 이웃 장정들에게 사정하여 사토라도 도와준다면 매우 감사하겠다고 부탁하고 있다. 寒氣漸緊 體履?何 聞方伯遊觀之行 太日在郡境 ??罷於應接 殊用仰念 治下韓生義周氏 以周之從弟也 以也從吳起 北渠以單? 方營其父母葬 無以完役 因其訴使隣近人丁 助給莎土 則誠萬丈光色矣 萬萬不宣 伏?下察 再拜上候狀 丙寅 九月 卄四日 民服人 尹鳳九 拜手 頃日 兪樂命之歸憑送 族弟鳳周之書 覓否 <기타참조> "편지-조선시대 사대부의 일상"‚ 순천대박물관‚ 2003. <참고문헌> "편지-조선시대 사대부의 일상"‚ 순천대박물관‚ 2003. "한국인물대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8.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