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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로필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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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변영로필서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작가> 변영로(卞榮魯‚ 1898-1961)의 호는 수주(樹州)이고 부천 출생이다. 12세 때 중앙학교에 입학하여 3학년 때 중퇴하였다. 1913년 중앙기독청년회관 영어반을 6개월만에 수료하고‚ 1914년 영시(英詩) 《코스모스》를 발표하였다. 1918년 중앙고보 영어교사로 들어갔고‚ 1919년 3·1운동 때는 YMCA의 구석진 방에서 일경(日警)의 눈을 피해 가며 독립선언서를 영역하여 해외로 발송하였다. 1920년 《폐허》 동인으로 문단에 데뷔‚ 1922년 이후 《개벽》지를 통해 해학이 넘치는 수필과 발자크의 작품 등을 번역해서 발표하였다. 1924년 일제하의 민족적 울분을 노래한 시집 《조선의 마음》을 내놓았고‚ 193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산호세대학을 수료하고 귀국‚ 1935년 동아일보사에 입사‚ 《신가정(新家庭)》 편집장이 되었다. 그는 《신가정》 표지에 손기정 선수의 다리만을 게재하고 ‘조선의 건각’이라고 제목을 붙이는 등 일본 총독부의 비위를 건드려 그들의 압력으로 회사를 물러나기도 하였다. 1927년 ‘우리의 것’을 알아보기 위해 백두산에 올라가 《두만강 상류를 끼고 가며》 《정계비(定界碑)》 《천지(?池) 가에 누워》 등 10여 편의 시를 발표하였다. 수필집 《명정(酩酊) 40년》은 무류실태기(無類?態記)로서 너무나 유명하고‚ 1981년 3월 그의 20주기를 맞아 새로 발견된 그의 작품까지를 수록하여 《수주 변영로 문선집(樹州卞榮魯文選集)》이 출간되었다. 1949년 제1회 서울특별시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회갑연에 초대를 받고 가지 못하는 대신 시를 지어 보내면서 부친 편지다. 옆에 붙은 한글 편지도 같은 내용인데‚ 한문을 모르는 부녀자들도 볼 수 있도록 동봉한 것으로 보인다. 편지의 필자가 변영로(卞榮魯)로 되어있지만 발신자의 주소가 중원군 엄정면(中原郡 嚴政面)이고‚ 수신자의 주소는 중원군 앙성면(仰城面)으로 되어 있는 점과 글씨‚ 편지의 날짜 등으로 볼 때 시인 수주(樹州) 변영로(1898-1961)와 동일 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 謹侯上 客年至月 分暫話拜別之懷 益不自勝 而日前令允友來訪問侯 ?別後 仍?伏? 謹詢春後 漸舒靜 體侯萬重 令允友昆季 安侍宅上 諸致均穩 伏頌區區 少弟 僅保拙狀 而近以脚脛生濕?太日辛苦 行步不仁故 似未能晉參於席末 ???? 當此?慶盛擧之宴 全然不可泯?故 荒?五十六字 謹呈于華軸 諸末笑覽?何 餘都留不備侯禮 庚申 二月 旬一日 少弟 卞榮魯 謹侯上 (小名 文一) 諺語로 또자서이 말씀하옵난거슨 대단이 미안하온거시 특별이 생각하시고 자제(子弟)까지 보내셔서 오라고 청하신 일이온데 공교이 달이에 종기가 대단하와 동이(?里)출입도 잘못하온즉 기구가 있사오면 타고라도 갈터이온데 기구불치(不置)로 그리도 못하옵고 사세 부득이 민민치 못하와 수연운(壽宴韻) 일수(一首)를 근정하오니 가서뵈이니나 달음읍시 아시고 부대 용서하옵소서 <기타참조> "강운 명품선"‚ 순천대박물관‚ 2001. <참고문헌> "강운 명품선"‚ 순천대박물관‚ 2001. "한국인물대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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