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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군자8폭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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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사군자8폭병풍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2-0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작가> 서병오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호는 석재(石齋)이다. 대구(?邱) 출생으로 일찍이 군수를 지냈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한번 들으면 모두 이해하고‚ 한번 보면 모두 기억하였으며‚ 시?글씨?그림?가야금?장기?바둑?의약에 능하여 ‘팔능(八能)’이라는 불렸다. 1901년을 전후하여 중국 상해(上涇)로 가서 그때 그곳에 망명 중이던 민영익(閔泳翊)과 친밀히 교유하면서 당시 상해에서 활동하던 유명한 중국인 서화가 포화(蒲華)?오창석(吳昌碩) 등과 가까이 접촉하여 그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중국에 머무는 동안 특히 포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그의 문인화법의 영향을 받은 문기(文氣) 짙은 묵죽(墨竹) 등 사군자를 그리게 되었다. 글씨는 매우 격조 있는 행서(行書)를 남겼다. 서병오는 1922년 대구에서 교남서화연구회(嶠南書畵硏究會)를 발족시켜 회장이 된 뒤‚ 서동균(徐東均)과 성재휴(成在烋)와 같은 서화연구생들을 지도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서울에서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가 열리게 되자‚ 박영효(朴泳孝)‚ 정대유(丁?有)‚ 김돈희(金敦熙)‚ 김규진(金圭鎭) 등과 더불어 서도부(書道部)?서(書)와 사군자?심사위원을 여러 번 역임하였으나 한번도 출품하지는 않았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이 사군자 8폭 병풍은 사군자와 행서에 능했던 석재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다. 매화‚ 석란 및 혜란‚ 국화‚ 석죽과 세죽 등 사군자 7폭을 차례로 그렸는데‚ 다만 제5폭에 사군자와는 이색적인 소재인 모란을 함께 병풍으로 구성하였다. 제1폭과 제2폭은 농묵과 담묵을 섞은 과감한 몰골로 매화 가지를 대칭적으로 배치한 후‚ 잔가지 위에 피어난 매화 꽃잎을 갈필을 이용한 구륵법으로 묘사하였고‚ 태점을 중복되게 찍거나 그어 바위의 입체감을 살렸다. 제3폭과 제4폭은 혜란(蕙蘭)을 그렸는데 길게 뻗어 올라간 갈필의 난엽에‚ 토파는 담묵과 농묵을 섞어 촘촘하게 찍어 묘사하였다. 난의 꽃대는 난엽보다 담묵으로 묘사하였지만‚ 농도의 차이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제5폭의 소재인 모란의 묘사는 꽃잎은 물론 나무의 가지와 잎을 모두 몰골로 처리한 후‚ 잎맥과 꽃술은 농묵으로 세부를 처리하였다. 이는 제6폭의 국화를 묘사하는데 몰골과 구륵을 동시에 사용한 것과 대조적인데‚ 여기서 국화꽃잎을 묘사하는 구륵의 선묘는 섬세하지 않은 속필로 그려졌다. 제7폭과 제8폭에서 세죽과 석죽의 줄기와 잎은 농묵과 담묵을 사용하여 원근과 입체감을 표현하였고‚ 세련된 구도가 돋보인다. 관서는 ‘석재거사(石齋居士)’ 또는 ‘석재(石齋)’라는 호를 사용하였고‚ ‘서병오인(徐丙五印)’과 ‘석재(石齋)’라는 백문방인과 주문방인을 각각 차례로 낙관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인물대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8. "한국회화사"‚ 안휘준‚ 일지사‚ 2000. "한국회화의전통"‚ 안휘준‚ 문예출판사‚ 1997.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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