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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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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석란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2-0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작가> 김규진의 본관은 남평(南平)이며‚ 평남 중화 출생이다. 자는 용삼(容三)이며‚ 호는 해강(涇岡)‚ 백운거사(白雲居士)‚ 취옹(醉翁)‚ 만이천봉주인(萬二千峯主人)‚ 석전경수(石田耕?)‚ 무이옹(無己翁)‚ 청허재주인(?虛齋主人)‚ 삼각산인(三角山人)‚ 포옹(圃翁)‚ 동교(東橋) 등 10개가 있다. 벼슬은 시종관(侍從官)을 지냈다. 8세부터 장인 小南 이희수(李喜秀‚ 1836-1909)에게 글씨를 배우고‚ 18세 때 청(?)에서 유학하여 서화명적(書畵名蹟)을 연구하였다. 전?예?해?행?초서(篆?隸?楷?行?草書)에 모두 묘경을 이루어‚ 영친왕 이은(英親? 李垠)에게 서법(書法)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김규진은 또한 『육체필론(六體筆論)』‚『서법진결(書法眞訣)』과 같은 서법관련 저서를 남겼다. 또한 안중식(安仲植)?조석진(趙錫晋)과 함께 서화협회를 창설하여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 경향 각지에서 서화전을 개최하여 서화 예술의 계몽에 진력하는 등 한국 근대화단에 지대한 영향력을 준 대표적 인물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이 그림은 본래 네 폭 이상의 병풍형식으로 그려진 석란도를 나중에 축의 형태로 각각 표구한 것으로 보인다. 처음부터 축의 형태로 그려졌다면 당연히 있어야할 관지가 생략된 점에서도 그러한 정황이 뒷받침된다. 비록 온전한 형식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화제에는 필법과 관련한 해강의 작란(作蘭)에 대한 화론을 전개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네 폭에 언급된 화론의 요지는 한마디로 ‘서화일치(書畵一致)’라 할 수 있다. 이는 화제에서 “서법은 화법과 통한다.” “필은 웅건한 것임으로 붓글씨를 잘 쓴 자가 아니면 능히 난(蘭)을 잘 칠 수가 없다.” 등의 내용에서 확인된다. 해강이 그린 가장 대표적인 화재로 대나무와 함께 난을 들 수 있다. 여기서 해강이 그린 난은 난 종류 중에서도 한 꽃대에서 많은 꽃이 피는 혜란계(蕙蘭系)라 볼 수 있다. 먹의 농담에 의해 표현된 난엽은 담묵의 난엽이 채 마르기 전에 거칠고 진한 난엽이 겹치면서 일어나는 파묵효과로 인해 난을 칠 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 오는 듯 하다. 담묵 처리된 난의 꽃대와 꽃술은 농묵의 난엽과 대조를 이룬다. 괴석의 표현은 우선 변화를 준 담묵의 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그 위에 담묵의 붓질을 반복하여 입체감을 나타내고자 하였으며‚ 태점을 이용하여 마무리하였다. 또한 능숙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필치로 먹의 농담과 건습이 조화를 이루는 자신감 있는 필묵법을 보인다. <참고문헌> "국역근역서화징"‚ 시공사‚ 1998. "한국인물대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8. "한국회화사"‚ 안휘준‚ 1980. "한국회화의 전통"‚ 안휘준‚ 1988.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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