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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잡영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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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동경잡영초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2-0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우리나라의 유명한 문인들의 시를 모아 만든 책. <일반적인 형태 및 특징> 본 유물은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널리 이름이 알려진 崔致遠(최치원)‚ 金克己(김극기)‚ 李滉(이황)‚ 柳成龍(유성룡)‚ 金誠一(김성일) 등의 시문을 엮어서 책으로 만들었다. 최치원의 자는 고운(孤雲)‚해운(涇雲). 869년(경문왕 9) 13세로 당나라에 유학하고‚ 874년 과거에 급제하였다. 879년(헌강왕 5) 황소(黃巢)의 난 때는 고변(高)의 종사관(從事官)으로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초하여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다. 조선시대에 태인(泰仁) 무성서원(武成書院)‚ 경주(慶州)의 서악서원(西岳書院) 등에 종향(從享)되었다. 저서에 계원필경(桂苑筆耕)‚ 중산복궤집(中山覆集)‚ 석순응전(釋順應傳)‚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 등이 있다. 김극기는 본관은 경주‚ 호는 노봉(老峯)으로 어려서부터 문명(文名)이 높았고‚ 입을 열면 시가 나왔다고 한다. 문과(文科)에 합격하였으나 관직에 뜻이 없어 그대로 초야에 묻혀 시(詩)를 즐겼다. 명종 때 학행(學行)으로 한림원(翰林院)에 보직되었으나 얼마 후 죽었다. 고려 말엽에 간행된 삼한시귀감(三韓詩龜鑑)에 따르면 그의 문집이 150권이나 된다고 한다. 저서에 김거사집(金居士集)이 있다. 이황은 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경호(景?)‚ 호는 퇴계(退溪)?도옹(陶翁)?퇴도(退陶)?청량산인(?凉山人) 등이며‚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경상북도 예안(禮安) 출생. 12세 때 숙부 이우(李)에게서 학문을 배우다가 1523년(중종18) 성균관(成均館)에 입학‚ 1528년 진사가 되고 1534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다. 이 후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고‚ 이언적(李彦迪)의 주리설(主理說)을 계승‚ 주자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발전시켰다.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묘 및 선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단양(丹陽)의 단암서원(丹巖書院)‚ 괴산의 화암서원(華巖書院)‚ 예안의 도산서원 등 전국의 수십 개 서원에 배향되었다. 류성룡은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의성 출생으로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64년(명종 19) 사마시를 거쳐‚ 156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를 시작으로 수많은 벼슬을 거쳤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체찰사(都體察使)로 군무를 총괄‚ 이순신(李舜臣) ?권율(權慄) 등 명장을 등용하였다. 이어 영의정이 되어 왕을 호종(扈從)하여 평양에 이르렀는데‚ 나라를 그르쳤다는 반대파의 탄핵을 받고 면직되었으나 의주에 이르러 과의 통호문제를 의논하였고‚ 그해 일본 사정을 탐지하려고 파견된 사행에서 부사(副使)로 임명되었다. 이때 조정에 올린 황윤길과의 보고가 엇갈려 탄핵의 대상이 되었으나 그는 민심을 잃으면 견고한 성과 무기가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여 내치(內治)에 힘쓸 것을 강조하였다. 왜란 초 경상도 일대가 왜군에 의하여 유린되자‚ 사태수습을 목적으로 다시 경상도초유사(招諭使)에 임명되어 공을 세웠으나 순국하였다. 저서로는 상례고증(喪禮考證)‚ 조선연혁풍속고이(朝鮮沿革風俗考異) 등을 남겼고‚ 1527년 후손들에 의하여 문집 학봉집이 간행되었다. 평안도도체찰사가 되었다. 이듬해 중국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松)과 함께 평양을 수복하고 그 후 충청 ?경상 ?전라 3도 도체찰사가 되어 파주까지 진격‚ 이 해에 다시 영의정이 되어 4도 도체찰사를 겸하여 군사를 총지휘하였다. 안동의 호계서원(虎溪書院)‚ 병산서원(屛山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저서에 서애집‚ 징비록(懲毖錄) 등이‚ 편서에 황화집(皇華集)‚ 정충록(精忠錄) 등이 있다. 김성일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사순(士純)‚ 호는 학봉(鶴峯)으로 안동 임하(臨河) 출신이다. 1556년(명종 11) 도산서원으로 가서 이황(李滉)을 만나 그 문하생이 되었다. 1567년 대과에 합격하여 승문원부정자(副正字)에 임명되었다. 이후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다. 1589년 의정부사인(舍人)으로 있을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보낸 현소(?蘇)?평의지(平義智) 등과 일본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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