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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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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화관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2-0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여자의 예장(禮裝)에나 또는 나라 잔치 때 기녀(??)?무동(舞童)들이 쓰던 관(冠). <개설> 화관은 부녀자들이 예복에 갖추어 쓰는 관모(冠帽)이다. <역사> 신라 문무왕 때 중국의 복식이 들어오면서 함께 전래되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화관에는 칠보로 장식한 칠보화관과 구름무늬를 새겨 만든 운관(雲冠)이 있었다. 족두리보다 높이가 높으며‚ 두꺼운 종이에 무늬를 새기고 검정칠을 한 뒤‚ 가장자리를 도채부금(塗彩傅金)하고‚ 위를 금은보화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화관의 양옆에는 비녀(족두리 비녀)를 꽂게 되어 있다. 잠두(簪頭)에는 나비를 장식하였는데‚ 흔히 죽잠(竹簪)을 사용하였다. 또한 오색구슬로 찬란하게 꽃모양을 둘렀으며‚ 나비가 나는 형상으로 하늘거리게 달아매었다. 궁중의 내연(內宴)에서 기녀·동기(童?)·무녀·여령(?伶) 등이 썼는데 그 모양이 약간씩 달랐다. 궁에서 갖추는 양식은 외간에서는 사용할 수 없게 하였으며‚ 품계를 구분하는 것이어서 천민들이 병용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가체를 금하고 화관이나 족두리를 쓰도록 권장한 조선 중기와 후기에는 서민들도 혼례 때에는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조선 후기에 와서 정장할 때에는 족두리를 쓰고‚ 화려하게 꾸밀 때에는 화관을 썼으며‚ 대개 활옷이나 당의를 착용할 때 썼다. (이 화관은 종이로 틀을 만든후 색천으로 씌웠고‚ 구슬과 술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오주연문장전산고‚ 임하필기‚ 증보문헌비고‚ 한국복식사연구(류희경‚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80) <사진자료> 화관 사진(조선여인의 삶과 문화(서울역사박물관)‚ 115쪽)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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