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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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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조족등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2-0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불을 켜서 어두운 곳을 밝히는 기구. <개설> 등은 기름을 넣어 불을 밝히는 기구로 기름을 넣는 등잔‚ 등잔을 떠받치는 등잔대‚ 등잔바탕으로 되어 있다. <역사> 등은 주로 한대(漢代)에 많이 사용하였고‚ 허베이성[河北省] 만청[滿城]에 있는 묘에서 발견된 금동제 장신궁등(長信宮)을 비롯하여 전하는 유물이 대부분 한대의 것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정(錠)’이라 하였고‚ 《사서장구집주(四書章句集注)》에서는 촛대 가운데에 초를 놓았기 때문에 등기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등은 일반적으로 기름을 담아서 불을 켜는 등잔‚ 등잔을 얹어서 사용하는 등경(燈豈)‚ 초를 꽂는 촛대‚ 들고 다니는 제등(提燈)‚ 걸어놓는 괘등(掛燈)‚ 실내에 놓는 좌등(坐燈)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들의 명칭과 형태는 다를지라도 기름불이나 촛불을 이용하도록 만든 구조는 공통된다. (1) 등잔은 사용된 재료에 따라서 토기·도기·자기·옥석제(?石製)로 나누어지며‚ 형태별로는 종지형·호형(壺形)·탕기형(湯器形)이 있다. 현존 유물로서 가장 오래된 등잔의 예는 고신라시대의 다등식 등잔(太燈式燈盞)과 백제 무령왕릉의 등감(燈龕)에 놓였던 등잔이 있다. (2)등경은 등잔을 적당한 높이에 얹도록 한 등대(燈臺)로서 흔히 등경걸이라 부른다. 등잔과는 별개로 만들어지나‚ 등잔에 긴 대를 붙여 만든 것도 등경이라 부른다. 대표적인 등경의 형태는 널찍한 하반에 서너 개의 거치형 단급(段級)이 있는 등가를 세우고 이 단급에 등잔걸이를 걸쳐놓아 등잔이 안정감있게 앉히도록 하였으며‚ 등잔 밑에는 우각형(牛角形)·유방형·타구형의 기름받이를 달아놓은 것으로서 상하귀천의 구별없이 가장 애용된 실내용 등기양식이다. (3)촛대는 일상생활용과 의식·예식용‚ 이동용의 수초〔手燭〕가 있다. 고식(古式)의 기본형은 복발형 대(臺) 위에 죽절형·연주형·장구형의 간주(竿柱)가 서고 그 위에 짧은 초꽂이 촉이 달린 받침접시가 있어 초를 안전하게 꽂도록 하였으며‚ 주로 의식·예식에 쌍으로 사용하였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촛대는 통일신라시대의 금동감옥촛대〔金銅嵌?燭臺〕로서‚ 여섯개의 수면(?面) 다리와 여섯 꽃잎의 상·하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4) 제등은 밤길을 갈 때나 의식·예식에 사용하는 휴대용 조명기구로서 초롱·등롱·청사초롱·홍사초롱·조족등(照足燈)·조촉(照燭)·유제등(鍮提燈)이 있다. 이중 조족등은 궁중의 빈전이나 순라꾼이 야경을 돌 때 사용하였던 것으로서‚ 그 형태가 박과 같다 하여 박등이라고도 불렀으며‚ 순라꾼이 도적을 잡을 때 쓴다 하여 ‘도적등’이라고도 불렀다. (5) 괘등은 주로 벽이나 들보에 거는 외등양식으로 제등과 비슷한 형태와 구조를 지녔으나 크기가 큰 것이 특징으로서‚ 사방등(유리등)·양각등·요사등·발등거리가 있다. 이 밖에도 직접적인 등기구는 아니지만 사찰에서 사용하던 석등(石燈)은 법당 앞에 설치되었고‚ 장명등(長明燈)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능 앞에 설치하여 화사(火舍 : 석등의 점등하는 부분) 안에 등기를 넣게 만들었는데‚ 야외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모두 석재를 사용하였다. <참고문헌> 삼재도회‚ 한국의 고등기(최순우 감수‚ 한국전력주식회사‚ 1968). <사진자료> 조족등 사진(종이공예문화(임영주‚ 상기호)‚ 42쪽)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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