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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주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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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오태주간찰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2-02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오태주(1668-1716)는 1679년 현종의 딸 명안공주와 혼인하여 해창위(涇昌尉)에 봉해졌으며‚ 명덕대부(明德??)의 위계를 받았다. 그후 오위도총부도총관‚ 조지서제조‚ 귀후서제조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글씨를 잘 썼으며‚ 예서에 능하였다. 왕실의 옥책(?冊)과 신판(神板)·유지(幽誌) 등을 도맡아 썼으며‚ 시문에 능하여 숙종의 총애를 받았다. 전하는 묵적으로는 행서체로 쓴 간찰이 다소 있으며‚ 금석문으로는 오두인석비(吳斗寅石碑) 등이 있다. 본 간찰은 11월 16일 작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일찍이 준비해 둔 관판 중간 부분이 갈라져 못쓰게 되었으니 다시 마련해 보재겠다는 내용이다. 또 이정장은 어제 새벽 만리현에있는 둘째 아들이 상을 당하여 즉시 본가로 보냈으나 관판 재목이 없어 저녁 무렵에야 겨우 소렴 준비를 마쳤으며‚ 성복에는 차질이 없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엎드려 사뢰옵건대 요즈음 체리(體履-건강)가 만안(萬安)하시온지‚ 우러러 거슬러 올라가는 마음이 구구합니다. 필선(弼善-세자시강원의 관명)댁의 숙모님은 끝내 이 달 16일 해시에 세상을 버리셨으니 비통하기 그지없습니다. 관판(관을 만들 판재)은 조치를 해 두었었는데 가운데가 쪼개져 쓸 수 없다고 하기에 찾아서 보내 주었습니다. 이정(李正-정은 관위명) 어르신네도 어제 새벽 파루(새벽의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종소리) 전에 상(喪)을 만리재(萬里峴) 작은 아이 집에서 내어 바로 본가로 돌아갔는데‚ 관재(棺材)가 없습니다. 어제 저녁 염습을 하였고‚ 겨우 염구를 갖추어 성복을 하였으니 어긋나서 물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나머지는 펴지 못하오니 하찰(下察)하소서 경년 동짓달 19일 태주 올림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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