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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영준호구단자(金?榮準戶口單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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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김시영준호구단자(金?榮準戶口單子)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2-02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고문서는 어떤 사실을 증명하고 이루려는 목적으로 작성된 옛문서로서 대체로 발급자와 수신자가 기록되며 청원‚ 진정‚ 통지‚ 계약‚ 증서‚ 증여 등이 주원문서로 1910년을 하한으로 한다. 크게 국왕‚ 왕실‚ 관청등의 공적인 기관에서 발급한 공문서와 개인 혹은 가문이나 친목단체 등의 사적인 기관에서 발급한 사문서로 나눌수 있다. 준호구단자는 백성들이 가문유지 소송등의 자료로 관에 요청하면 관청에서는 보관중인 호적대장에서 해당 호에 기재된 내용을 그대로 베껴 발급해주는 것으로 오늘날의 호적등본 혹은 주민등록등본과 같은 것이다. 1867년-1876년까지 삼척부 근덕면에 거주하고 있는 유학(幼學) 김시영(당시 56세-65세)에게 관에서 발급한 준호구단자 4점이다. 김시영의 4조(부‚ 조‚ 증조‚ 외조)를 순서대로 적었고 모시고 사는 어머니 심씨(1867년 문서‚ 당시 77세)와 아들 오혁(1870년 문서부터‚ 후에 병서로 개명)과 며느리 홍씨와 나이 그리고 거느린 노비 섭용과 나이를 순서대로 적었다. 김시영의 아버지인 김석려의 준호구단자(춘28유물)를 참조하면 원래 호주였던 김석려가 1864년-1870년 사이에 죽었기 때문에 김시영이 호주를 승계하였음을 알수 있다. 어머니 심씨도 1867년-1870년 사이에 죽었고‚ 이에 아들 오혁(병서)부부가 홀아비인 아버지 김시영과 함께 살았음을 알수 있다. 한편 김시영은 1873년-1876년 사이에 학모로 개명하였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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