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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왕흥사지 사리기 일괄 (扶餘 ?興寺址 舍利器 一括)_보물 제1767호 부여 왕흥사지 사리기 일괄(2012년 국보‚보물 지정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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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부여 왕흥사지 사리기 일괄 (扶餘 ?興寺址 舍利器 一括)_보물 제1767호 부여 왕흥사지 사리기 일괄(2012년 국보‚보물 지정보고서)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5-29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부여 왕흥사지 사리기 일괄에 대한 설명입니다.‘부여 왕흥사지 사리기 일괄’은 목탑지의 심초석 남쪽 중앙 끝단에 마련된 장방형 사리공 내부에서 발견되었다. 발견된 사리장엄구는 가장 바깥에 청동제의 원통형 사리합을 두고 그 안에 은으로 만든 사리호‚ 그리고 보다 작은 금제 사리병을 중첩하여 안치한 3중의 봉안 방식을 취하였다. 사리를 보호하기 위해 가장 귀한 재질인 금‚ 은‚ 동을 순서대로 사용한 백제 사리장엄의 면모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우선 청동제사리합은 바닥이 납작한 원통형 몸체의 위‚ 아래로 두 줄의 음각선을 둘렀고 사리함 뚜껑에도 두 줄씩 음각선을 일정한 간격으로 새겨 넣었다. 뚜껑 중앙에 솟아 있었던 연봉형의 손잡이는 부러진 채 발견되었는데‚ 현재 복원되어 있다. 청동 합 안에 넣었던 은제사리호는 직립된 긴 목 아래로 둥근 몸체와 낮은 굽을 지닌 호의 모습을 하였다. 목 부분에 접합한 흔적이 보이는 것은 금제 사리병을 안치하기 위해 상부와 하부를 따로 만들어서 나중에 접합한 것으로 추측된다. 불룩하게 솟은 뚜껑 중앙의 연봉형 손잡이가 있고 그 주위에 연잎을 유려하게 새겼다.
특히 몸체의 안쪽 바닥에는 별도의 받침대가 있는데‚ 은제사리호 내부에 안치되는 금제사리병이 움직이지 않도록 계획된 것이다. 가장 안쪽의 굽 달린 금제 사리병은 아래쪽으로 갈수록 볼록해지는 호리병 형태로서 가장자리에는 음각선이 한 줄 새겨져 있다. 뚜껑 가운데로 보주형의 손잡이가 솟아있으며 역시 그 주위에 6엽의 연잎을 새겼다.
청동제사리합에는 6행 29자의 명문이 확인된다. “丁酉年二月‚ 十五日百濟‚ ?昌爲亡?‚ 子立刹本舍‚ 利二枚葬時神化爲三” 즉‚ “정유년(丁酉年‚ 577년) 2월 15일에 백제왕 창(百濟?昌)이 죽은 왕자를 위하여 찰(刹)을 세우는데‚ 2매였던 사리가 장시(葬時)에 신(神)의 조화로 3매가 되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 명문은 사찰(刹)의 건립시기‚ 사리기의 제작시기 등을 알려주고‚ 더불어 사찰의 건립 배경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부여 왕흥사지 사리기 일괄’은 현재까지 확인된 국내 사리기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사리장엄구로 가치가 높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cha.go.kr/cha/idx/Index.do?mn=NS_01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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