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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신장군 유품 (鄭忠信將軍 遺品)_교지
- 저작물명
- 정충신장군 유품 (鄭忠信將軍 遺品)_교지
- 저작(권)자
-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 출처
- 공표년도
- 창작년도
- 2015-05-29
- 분류(장르)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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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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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신장군 유품에 대한 설명입니다.정충신(1576∼1636) 장군은 17세의 어린 나이로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의 지휘 아래 전쟁에 참가했으며‚ 무과에 급제한뒤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을 수습하여 진무공신으로 봉해졌다. 그 후 정묘호란에서 공을 세우고 포도대장‚ 경상도 절도사 등을 역임했으나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몇 개월 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천문·지리·역술·의술 등 여러 면에 걸쳐 뛰어났으며‚ 청렴하기로도 이름이 높았다.
정충신 장군의 유품들은 서산군 지곡면에 있는 정충신 장군의 사당에 보관하고 있었으나‚ 1975년 도난당하고 2달 만에 다시 찾았는데‚ 그 때 투구가 없어져 그 사진만이 남게 되었다. 현재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유품은 모두 5점이다.
갑옷은 1630년 5월 가도에서 일어난 병란을 토벌할 때에 인조가 활과 화살‚ 검과 함께 하사한 것으로 그가 생전에 입었던 군복이다. 길이 116㎝이며‚ 면 3겹을 2㎝ 간격으로 꼬아서 누빈 위에 황색 단을 입히고 그 위에 징을 박은 것으로 어깨 부분은 철로 만들었고 가슴 부분에만 가죽의 흔적이 남아있다.
서군사명기(西軍司命旗)는 총길이 138㎝‚ 너비 55.5㎝로 전쟁 때 사용했던 깃발이다.
영정은 족자로 된 초상화로‚ 머리에는 검은색의 사모를 쓰고 관복을 입고 중국식 의자에 앉아 있는 장군의 전신(全身)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향로는 좌우에 손잡이가 있으며‚ 향로 주위에 산과 구름무늬가 새겨 있다. 다리는 굽다리가 3개이며‚ 반구형의 뚜껑 맨 위에는 뿔달린 용의 장식이 달려 꼭지 역할을 하고 있다.
향합 역시 둥그런 형태에 굽다리가 3개이고‚ 뚜껑 중앙에 꼭지가 달려 있으며 향로에 비해 형태가 훨씬 소박하고 표면에 무늬가 없다.
- 저작물 파일 유형
- 저작물 속성
- 1 차 저작물
- 공동저작자
- 1유형
- 수집연계 URL
- http://www.cha.go.kr/cha/idx/Index.do?mn=NS_01
- 분류(장르)
- 사진
- 원문제공
-
원문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