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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일두고택 (咸陽 一? 古宅)_함양일두고택 (촬영: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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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함양일두고택 (咸陽 一? 古宅)_함양일두고택 (촬영:문화재청)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5-29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함양일두고택에 대한 설명입니다.조선 성종 때의 대학자 정여창(1450∼1504)의 옛집으로‚ 지금 남아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조선 후기에 다시 지은 것이다. 사랑채는 현 소유자의 고조할아버지가 다시 지었다고 하며‚ 안채는 약 300년 전에 다시 지은 것이라고 전한다. 이 집의 터는 500여년을 이어오는 명당으로도 유명하다.
솟을대문에는 정려(旌閭)를 게시한 문패가 4개나 걸려 있다. 대문을 들어서서 곧바로 가면 안채로 들어가는 일각문이 있고‚ 왼쪽으로 비스듬히 가면 사랑채가 나온다. 높은 기단 위에 지은 사랑채는 'ㄱ'자 모양이다. 일각문을 들어서서 사랑채 옆면을 따라가면 다시 중문이 있고 이 문을 지나야 '一'자모양의 큼직한 안채가 있다. 왼쪽에는 아랫방채가 있고 안채 뒤쪽으로는 별당과 안사랑채가 있다. 또 안채 뒤 따로 쌓은 담장 안에는 가묘(家廟)가 있다.
이 집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사랑채 앞마당에 꾸민 인공산이다. 돌과 나무를 적절하게 배치하고 엄격한 법도에 따라 아름다운 인공산을 꾸몄는데‚ 지금은 원래의 옛모습을 그대로 볼 수는 없다. 이러한 여러 가지 구조적 특성과 함께 살림살이들이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당시의 생활상을 파악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지정 당시 명칭은 '함양정병호가옥(咸陽鄭炳鎬家屋)'이었으나‚ 조선 성종 때의 이름난 유학자 일두 정여창(1450-1504)의 생가지에 후손들이 타계 1세기 후 중건한 가옥인 점을 반영하여 그의 호를 따라 ‘함양 일두 고택’으로 지정명칭을 변경(2007.1.29)하였다.
※ 위 문화재는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cha.go.kr/cha/idx/Index.do?mn=NS_01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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