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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통령생가 (朴?統領生家 ‚ Park President Birthpla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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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박대통령생가 (朴?統領生家 ‚ Park President Birthplace )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9-09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 개요 >
이 집은 대한민국 제5대에서 제9대까지 대통령을 지낸 박정희(1917~1979)가 태어나서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생가 내에는 안채 및 사랑채와 1979년에 설치한 분향소가 있다. 건립 당시 안채는 초가였으나 1964년 현재의 모습으로 개조되었다.
원래 생가의 모습에 대한 기억은 다음과 같다. 메주 뜨는 냄새와 서까래가 보이는 천장에 파리똥이 새까맣게 앉은 황토 벽으로 된 방에는 신문지 한 장도 바르지 않았다. 장대 두 개로 시렁을 지르고 그 위에 세간을 차려 놓고 사는 전형적인 한국 농촌의 토방(土房) 속에서 태어났다.
움푹하게 패인 대지에 동쪽만 제외하고 사방이 대나무와 탱자나무 숲으로 빙 둘러쳐진 곳이어서 담을 쌓을 필요가 거의 없다. 여기서 박성빈은 온 가족과 함께 황토 흙을 이겨서 흙벽돌을 만들고 안채와 사랑채인 두 초가를 지었다. 안채는 북향. 정면에 있는 언덕과 대나무 숲이 바람막이 역할을 하도록 방향을 잡은 것이다. 박정희가 쓴 [나의 소년 시절]에는 '이 집은 6·25동란 당시까지도 옛 모습 그대로였으나 6·25 때 파괴된 것을 사랑채만 옛 모습으로 복구하고 안채는 초가로 가건물을 백형이 지었다가 5·16 후 지금 있는 안채를 다시 건립하였다.
원래의 안채는 一자 모양으로 부엌과 방 두개 사이로 마루방이 하나 있었다. 박정희가 태어난 사랑채에도 방이 둘이었다. 그의 산실인 큰방은 2×3m 크기로서 부엌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사랑채 작은 방에는 정희가 상희 형에게서 물려받은 앉은뱅이 책상 하나가 지금도 놓여 있다. 가로 88cm‚ 세로 53cm 정도인데 서랍이 두개 달려 있다.
박정희가 태어난 사랑채에는 외양간과 함께 소여물을 끓이는 큰 가마솥이 걸렸던 부엌이 있다. 이 부엌의 한쪽 벽을 따라서 디딜방아가 놓여 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우물이 있고 그 옆에 통시가 있다. 지금 남아 있는 가구들을 가지고 추정하면 이 집안의 재산 목록은 장롱 하나‚ 놋쇠 화로 하나‚ 탈곡기 한대‚ 가마솥 몇 개‚ 밥상과 소반 몇 개‚ 숯불 다리미‚ 호롱불 등잔 서너개‚ 앉은뱅이 책상 하나‚ 식기와 옷가지들‚ 그리고 언문소설을 읽는데 썼던 백남의의 돋보기 하나‚ 가축으로는 닭이 대여섯 마리‚ 황소 한 마리‚ 박성빈 일가가 약목에서 이사 올 때 가져온 가구는 황소 한 마리의 등에 다 실을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기타정보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kcti.re.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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