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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추대·영원암‚ ≪해산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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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옥추대·영원암‚ ≪해산첩≫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9-22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수영(字 君芳‚ 號 之又齋)은 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시문서화詩文書?와 기행사경紀行寫景‚ 지도地圖를 제작하며 일생을 보냈다. 그는 산수화를 비롯한 다양한 화제를 다루면서 독창적인 화풍을 형성했다.
《해산첩》은 정사년(1797) 가을‚ 그의 친구인 여춘영呂春永(1734~1812)과 함께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그린 초본을 바탕으로 2년 후에 화첩으로 제작한 것이다. 화첩의 표지에 ‘해산첩涇山帖’이라고 적혀 있으며‚ 23점의 그림과 3점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첫 번째 그림은 담탕?宕(생몰년 미상)이라는 사람이 그린 수묵산수화이고‚ 다음부터는 정수영의 그림으로 금강산 전체를 그린 <금강전도金剛全圖>부터 <옹천에서 멀리 바라보다甕遷遠眺>까지 내외금강內?金剛‚ 해금강涇金剛‚ 고성高城의 명승지名勝地를 여정에 따라 담아냈다. 글은 <동유기東遊記>를 비롯해 모두 정수영의 글씨이고‚ 이외에도 그림의 화면 위쪽 여백이나 좌우 여백에 일정‚ 풍경‚ 유래 등을 자세히 기술한 기행문이 실려 있다. 이 화첩에는 분방한 필치와 간략한 묘사‚ 몽당붓의 사용‚ 담채의 선별적 사용‚ 윤곽이 선명한 각진 바위 등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장면은 ≪해산첩≫의 제 8면인 <옥추대·영원암> 이다. 정수영은 명경대明鏡臺까지 갔는데 그곳부터는 길이 험하여 가마를 더 이상 탈 수 없어 겨우 영원암靈源菴에 도착하였다. 이는 화면의 우측에 적힌 제발을 통해 알 수 있다. 화면의 중앙에는 암자가 있고 그 좌측 절벽의 바위는 옥추대?抽臺이다. 제발에는 영원암에 도착한 것까지 언급이 되어 있는데 그림 속 인물들은 옥추대에서 쉬고 있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어‚ 이들이 옥추대에도 올랐음을 알 수 있다.
정수영의 글과 인문
自明鏡臺復向前‚ 石逕甚險‚ 輿不得上‚ 杖策亦難‚ 艱辛到庵. 庵中只有一僧. 繞庵石峯無非套絶‚ 庵之西南‚ 有?抽臺.
명경대明鏡臺에서 다시 앞으로 나아가면 돌길이 매우 험하고 가마를 타고는 갈 수가 없고 지팡이를 짚고도 가기가 어려워 가까스로 암자에까지 올라왔다. 암자에는 스님이 한 사람만 있었다. 암자 주변에 있는 봉우리들은 모두 기이한 절경이었고‚ 암자에서 서남쪽으로 옥추대?抽臺가 있다.
印文 | 「泉石膏.」‚ 「所?者道也」‚ 「君芳」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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