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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

백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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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백형원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백형원 활동시기 : 조선시대 상세설명 효자 백형원 1805년 (순조5년) 기성면 이평리 심수동에서 태어났으며 고려조 명신 충간공 백순보 선생의 11대 손이다. 산수가 수려하고 풍치가 아름다운 고요한 산속의 마을 심수동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이 아버지와 형을 여의고 어머니 장씨 부인의 정성어린 보살핌을 받으며 홀로 쓸쓸히 자라났다. 차츰 나이가 들면서 어머님에 대한 효성이 뛰어나 마을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하였으며 그의 생활 모두가 효의 실천으로 행하였으니 그는 해마다 엄동설한이 되면 어머님 방에 들어가 방안이 따뜻한가를 하루에도 여러번 확인 하였으며 추운 겨울에 어머님의 건강을 위해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아다가 고깃국으로 입맛을 돋우는 한편 항상 웃음으로 마음 편하게 모시니 집안이 평화롭기만 하였다. 어느해 겨울 어머니께서 뜻하지 아니한 병이 들어 날이 갈수록 병세가 더욱 심했다. 여러방면으로 약을 구하며 병간호에 다섯달동안 정성을 다하였으나 효과가 없게 되자 그는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며 "차라리 이 몸이 죽고 어머님의 병이 낳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올리다 보니 날이 밝아오는 것을 몰랐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그토록 악화 되기만 하던 어머님의 병세는 하늘이 도우심인지 차차 좋아져서 소생하게 되었다. 이는 그의 지극한 효심에 하늘이 감복하였던 것이리라. 어머니는 천수를 다하고는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애통함은 동민의 심금을 울렸으며 무덤 옆에 초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3년동안 하며 애곡소리 끊어지지 않으니 그의 지극한 효심은 온마을 사람을 감동 시켰다. 어머님의 생전과 죽은 후에 그 효성이 널리 알려져 1894년 (고종31년)에 현령의 추천으로 임금님이 알게 되어 사헌부 지평의 벼슬을 받게 되니 향중에서 1901년 10월 23일 효자각을 지어 그를 추앙하고 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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