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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각‚ 5백년 가문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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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임청각‚ 5백년 가문을 이어간다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6-04-12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 한국에 현존하는 살림집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임청각(臨?閣)은 500년의 역사를 지닌 안동 고성 이씨의 종택이다. 조선시대부터 양반의 고을로 알려진 경상북도 안동에는 오늘날까지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수십 개의 종택이 밀집해 있다. 이중 일부 가옥에서는 한옥 스테이를 하며 선조들의 생활이 배어있는 공간을 체험할 수 있는데‚ 안동 중심에서 500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고성 이씨(固城 李氏)의 종택(宗宅)인 임청각(臨?閣)이 바로 그런 곳이다. 고성 이씨는 경상남도 고성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임청각은 왕이 아닌 자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규모인 99칸으로 지어진 살림집이다.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이원(李原)의 여섯 째 아들 이증(李增)이 안동으로 낙향하여 처음 터전을 잡았다. 이후 이증의 셋째 아들 이명(李?)이 1519년(중종 14년)에 건물을 지어 안동 고성이씨의 종택이 되었다. ▲ 임청각은 영남산 기슭의 비탈진 경사면에 안채‚ 중채‚ 사랑채 등의 건물을 배치하여 채광효과를 높였다. ▲ 군자정 창문에서 바라본 연못과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는 임청각의 사당. 임청각은 집 앞을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집 뒤로는 영남산(嶺南山)이 절경을 이루는 전통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에 자리잡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이런 집자리를 명당이라고 한다. 영남산 기슭의 비탈진 경사면에 안채‚ 중채‚ 사랑채 등의 건물을 계단식으로 배치했으며‚ 각 건물 사이에는 크고 작은 다섯 개의 마당을 두어 공간의 활용도를 높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좌측에는 정침(正寢)이 있다. 우측에는 담장을 사이에 두고 별당 군자정(君子亭)이 있으며‚ 군자정 바로 옆에는 연못이 있고‚ 연못 옆 언덕 위에는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임청각’이라는 집의 당호는 중국 육조시대(六朝時代)의 시인 도연명(陶?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의 구절 중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바람 불고 (登東皐以舒嘯)‚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노라(臨??而賦詩)”라는 시구에서 ‘임(臨)’자와 ‘청(?)’자를 따온 것이다. 가옥의 현판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의 친필로 새겨졌다. 임청각은 그 이름에 걸맞게 당대의 수많은 시인들과 학자들이 즐겨 찾던 풍류가 넘치는 곳이었다. ▲ 임청각 군자정 내부 벽면에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친필로 새겨진 가옥의 현판(상단)과 고성 이씨 가문의 독립유공자들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고성 이씨 가문은 이렇게 수백 년 동안 안동 양반사회에서 명문 집안으로 기틀을 다지며 명예를 지켰다. 하지만 1910년 일제강점기에 접어 들면서 임청각은 단순한 양반댁 가옥이 아닌 독립운동의 현장으로 변했다. 당시 종손(宗孫)이었던 석주 (石?) 이상룡(李相龍‚ 1858~1932)은 나라가 망하자 임청각 사당에 봉안되어 있던 조상의 위패를 땅에 묻고‚ 모든 가산을 처분해 만주로 건너가 여생을 독립운동에 바쳤다. 만주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을 비롯해 그의 아들과 손자 등 모두 4대에 걸쳐 독립운동을 했다. 임청각의 군자정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독립운동 훈장과 자료들은 나라를 위해 헌신한 독립자존의 정신을 전달한다. 군자정에서 나와 언덕 위 사당 쪽으로 향해 본다. 문은 잠겨 있지만 조상의 위패가 없는 임청각의 사당은 “나라를 되찾지 못하면 가문도 의미가 없다”고 말한 이상룡의 신념을 나타내고 있다. 돌담 넘어 낙동강 쪽을 바라보며 본래 대문의 모습은 어땠을지 상상해보고‚ 마루 끝에 걸터 앉아 '가문'‚ '명예'‚ '선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생각해본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이곳에는 진정한 선비의 가문이‚ 또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이하나 코리아넷 기자 사진 위택환 코리아넷 기자 hlee10@korea.kr 임청각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숙박 예약 안내는 아래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http://www.imcheonggak.com/ ▲ 한 집에서 9명의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유공자가 나온 임청각의 대문.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kocis.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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