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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저작자 - 정창섭

정창섭_인물사진.jpg 저작자 이미지
정창섭
저작자 상세보기
출생년도
: 1927-09-22 ~ 2011-02-24
출생지
: 충북 청주
직업
:

주요이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1961~1993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회 위원

1993년 국민훈장 목련장
1980년 제29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초대작가상
1955년 제4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특선

한국 단색화의 대표적 작가이자 닥의 화가로도 불리는 정창섭(鄭昌燮, 1927~2011)은 종이대신 한지의 원료인 닥을 주재료로 사용해 작업한다. 직접 만든 풀에 반죽한 닥을 캔버스 위에 평평하게 바르는 모든 과정이 정창섭에게는 물(物)과 아(我)가 만나게 되는 과정이다. 이른바 ‘물아합일(物我合一)’라고 할 수 있는 이 단계에 다다른 결과물로서, 정창섭의 작품은 이미지가 아닌 ‘닥’이라는 물질 그 자체가 존재하는 생명체와도 같다.

工房(공방)-1955-1 이미지

工房(공방)-1955-1

CC BY-NC-ND[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금지]
1927년 9월 22일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난 정창섭은 1946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하여 1951년에 졸업한다. 이후 1953년 <제2회 국전>에 출품한 <낙조(落照)>가 특선에 당선되면서 화단에 정식 등단하였다. 그는 1950년대 중반까지 소묘력에 바 ...
1927년 9월 22일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난 정창섭은 1946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하여 1951년에 졸업한다. 이후 1953년 <제2회 국전>에 출품한 <낙조(落照)>가 특선에 당선되면서 화단에 정식 등단하였다. 그는 1950년대 중반까지 소묘력에 바탕을 둔 구상화를 그렸는데 1955년에 제작한 <공방(工房)>(1955)을 보면 인체와 정물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정창섭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심문(心紋)B>(1958)이 그러한 변화를 잘 드러내준다. 이 작품에서 형상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으며 작가의 행위가 연상되는 두터운 마티에르(matière)와 색면만이 존재하였다. 이는 정창섭이 점차 대상을 이성적으로 분석하여 그리기보다 작가 자신과 재료 본연의 물성에 집중하기 시작했음을 시사했다. 또한 그가 전근대적 잔재, 이른바 ‘국전양식’에서 벗어나 보다 실험적이고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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交感(교감) 33-1968-3 이미지

交感(교감) 33-1968-3

CC BY-NC-ND[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금지]
정창섭의 작업은 1960년대 당시 화단의 주요 경향이던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아 또 한 번의 변화기를 맞았다. 이때부터 정창섭은 서구에서 유입된 앵포르멜을 동양적 미의식으로 수용하는 자신만의 예술관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는 다양한 측면으로 나타났는데, <작품 E-107 ...
정창섭의 작업은 1960년대 당시 화단의 주요 경향이던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아 또 한 번의 변화기를 맞았다. 이때부터 정창섭은 서구에서 유입된 앵포르멜을 동양적 미의식으로 수용하는 자신만의 예술관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는 다양한 측면으로 나타났는데, <작품 E-107>(1966), <교감(交感)33>(1968) 등 이 당시 제작된 작품에 자주 등장한 ‘둥근 원’이 단적인 예이다. 하지만 정창섭은 화면에서 원을 부유하듯 표현함으로써 조형성보다 작품의 평면성을 강조하여 물아합일을 추구한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드러냈다. 또한 1970년대부터는 ‘한지’를 작업의 주재료로 채택하여 먹의 발묵 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때부터는 원이라는 조형성이 더욱 사라졌으며 한지의 재료적 특성만이 화면에 남게 됐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이미지가 아닌 물질과 조우하게 하는 경험을 선사했다. 결국 재료에 대한 정창섭의 애정 어린 탐구와 이해가 작품으로 구현되기 시작한 셈인데 1970년대는 그에게 닥 작업으로 이행해가는 과도기이자 탐색의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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默考(묵고) NO.91059-1991-10 이미지

默考(묵고) NO.91059-1991-10

CC BY-NC-ND[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금지]
1980년대로 접어들자 정창섭은 닥의 질감과 효과를 본격적으로 탐색해가기 시작했다. 닥이라는 원재료 느낌을 그대로 살리거나 완전히 표백된 상태로 만드는 등 닥의 질감이 다양하게 나타났다. 색상에 있어서도 강렬한 원색을 사용한 이전과 달리 닥 본연의 색감을 온전히 살리거 ...
1980년대로 접어들자 정창섭은 닥의 질감과 효과를 본격적으로 탐색해가기 시작했다. 닥이라는 원재료 느낌을 그대로 살리거나 완전히 표백된 상태로 만드는 등 닥의 질감이 다양하게 나타났다. 색상에 있어서도 강렬한 원색을 사용한 이전과 달리 닥 본연의 색감을 온전히 살리거나 아크릴물감을 사용해도 채도가 높지 않은 은은한 색감을 선호했다. 이렇게 정창섭의 작업은 외양적으로도 조형적인 탐색을 넘어 재료의 본성, 즉 원형적인 기운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해갔다. 물아합일을 향한 정창섭의 노력은 작품의 제작과정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그는 푹 삶은 닥을 캔버스 위에 올려놓고 그것을 고른 면을 만들기 위해 손으로 두드리고 매만지는 행위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면 어느새 화면에는 정창섭과 닥이 주고받은 무언의 대화와 호흡한 흔적만이 남아 있으며 닥종이가 마르는 과정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표면의 주름은 미묘한 명암을 만들어내고 있어 화면 전반에 율동감을 더한다. ‘그리지 않은 그림’, 질료로 채웠지만 빈 공간이며, 정제돼 있지만 숨을 쉬고 있는 생의 공간, 그것이 바로 정창섭의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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默考(묵고) NO.94703-1994-31 이미지

默考(묵고) NO.94703-1994-31

CC BY-NC-ND[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금지]
한국의 전통재료 한지와 닥을 직접적으로 사용한 작가로는 정창섭이 유일할 것이다. 그의 모든 작업과정은 자신과 닥의 영혼을 나누는 제의적 행위, 그래서 심연에 잠자고 있던 자신의 의식 일체를 일깨우는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정창섭은 작품 안에서 재료 스스로 존재할 수 있도 ...
한국의 전통재료 한지와 닥을 직접적으로 사용한 작가로는 정창섭이 유일할 것이다. 그의 모든 작업과정은 자신과 닥의 영혼을 나누는 제의적 행위, 그래서 심연에 잠자고 있던 자신의 의식 일체를 일깨우는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정창섭은 작품 안에서 재료 스스로 존재할 수 있도록 존중하고 배려했다. 그에게 닥은 재료 이상의 존재, 다시 말해 ‘동반자’였던 셈이다. 구체적으로 정창섭이 전달하려는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는 그만의 따뜻한 인간미가 물씬 느껴진다. “내가 어떻게 하려는 조형의지를 완전히 버리고 닥이 어떤 표정을 갖고 나와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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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미술 곽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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