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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국신민서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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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황국신민서사석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를 각인(刻印)한 황국신민서사비(皇國臣民誓詞碑)를 세울 때‚ 그 기반을 다지기 위해 사용된 기초석이다. <특징> 이 황국신민서사석은 1940년 8월 1일 충북 옥천군 소재 옥천 제2공립심상소학교(第二公立尋常小學校‚ 현 옥천 죽향초등학교)에 황국신민서사비를 세울 때 사용한 기초석 중 하나이다. 이 서사석에는 `황국신민의 서사(皇國臣民ノ誓詞) `의 내용인 ‘나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이다(我共ハ?日本帝國ノ臣民デアリマス)’‚ ‘나는 마음을 합해 천황에게 충성을 다한다(我共ハ心ヲ合セテ?皇陛下ニ忠義ヲ盡シマス)’‚ ‘나는 인고 단련하여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된다(我共ハ忍苦鍛鍊シテ立?ナ强イ國民トナリマス)’라는 내용이 한쪽 면에 가타카나(カタカナ)로 기록되어 있고‚ 다른 면에는 ‘옥천 제2공립심상소학교(沃川第二公立尋常小學校)’‚ ‘여자(女子)’‚ ‘원명희(元明喜)’‚ ‘15학급 3년(十五ノ三)’이라는 기록자의 학교‚ 성별‚ 이름‚ 학급‚ 학년이 먹을 사용하여 한자로 기록되어 있다. 일제는 전교생에게 서사비의 기초석으로 사용할 돌까지 황국신민서사를 써오게 하여 정신적으로도 철저하게 황국신민교육을 실시하고자 하였던 점을 알 수 있다.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는 1938년 개정된 제3차 조선교육령(朝鮮敎育令)에 따라 일제가 한국인의 황국신민화를 강화하기 위해 암송·제창하게 한 맹서이다. 일제는 제3차 교육령 기간 중의 교육을 완전히 전시 체제화하고 ‘국체명징(國體明徵)’‚ ‘내선일체(內鮮一體)’‚ ‘인고단련(忍苦鍛鍊)’ 등 3대 교육방침을 내세우고 있었다. 제3차 조선교육령은 1938년 3월에 7대 조선 총독 미나미지로(南次郞)가 발표한 교육방침으로서‚ 모든 교육 내용에서 일본적인 것이 보다 강화되고 수업을 일본어로 할 것 등이 강요되어‚ 철저한 황국신민교육을 실시하려는 의도에서 발표되었다. 황국신민서사는 1937년 10월에 제정되어 아동용과 중등학교 이상의 학생‚ 일반용 두 종류가 있다. 아동용의 내용은 ‘나는 대일본제국의 신민(臣民)이다.’‚ ‘나는 마음을 합해 천황 충성을 다한다.’‚ ‘나는 인고단련(忍苦鍛鍊)하여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된다.’이고‚ 성인용 황국신민서서의 내용은 ‘우리들은 황국신민이다. 충성으로써 군국에 보답하자.’‚ ‘우리들 황국신민은 서로 신뢰‚ 협력하여 단결을 굳게 하자.’‚ ‘우리들 황국신민은 인내‚ 단련의 힘을 길러 황도를 선양하자.’이다. 이 서사는 학교를 비롯하여 관공서‚ 은행‚ 회사‚ 공장‚ 상점 등 모든 직장에서의 조회 또는 회합에서 제창되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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