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탑상문전

추천0 조회수 21 다운로드 수 0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탑상문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우리나라의 전돌은 기와와 함께 삼국시대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고구려의 국내성 도읍기(3-427년)와 백제의 한성 도읍기(?-475년)를 통하여 초기의 전돌에 대해 살펴볼 수 있지만 묘전돌과 약간의 부전돌에 지나지 않는다. 한반도에 전돌이 처음 들어오게 된 것은 한사군이 설치된 기원전 2-1세기경이라고 할 수 있으며 기와 제작술의 파급과 함께 전돌의 전래는 우리나라의 건축문화와 주거 생활에 커다란 변혁을 가져왔다. 초기에는 돌무지무덤이나 전실분을 축조하기 위한 묘전돌이 위주였다. 고구려?백제?고신라 삼국에서 각각 특색있게 전개되던 전돌 문화는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완성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벽전돌?탑전돌?특수 전돌 등과‚ 연꽃 무늬나 보상화무늬‚ 보상당초‚ 초화‚ 불상‚ 불탑‚ 귀면 등이 다채롭게 새겨진 부전돌이 다양하게 제작되어 화려함과 장식성의 극치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무늬 전돌 대신에 무문 전돌이 많이 제작되고‚ 건물의 벽이나 성벽을 쌓기 위한 벽전돌이 중심이 되면서 기능적이고 단순한 의장으로 변화하였다. 경북 경주시 향교 부근에서 출토된 연질의 방형 불상문전으로‚ 바탕흙은 적황색을 띠고 있으며‚ 모래알갱이가 많이 섞여 있으며‚ 표면의 마모가 심하다. 전탑을 축조하는 데 사용된 전돌로 추측되는데 전돌의 측면에 결가부좌한 여래좌상 3구를 같은 간격으로 배치한 듯 보인다. 불상은 여래상으로 신광과 두광의 광배를 갖춘 것으로 파악된다. 그 외 표면은 도구 등으로 다듬은 흔적이 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