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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제사리병
- 저작물명
- 청동제사리병
- 저작(권)자
-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 출처
- 공표년도
- 창작년도
- 2015-01-21
- 분류(장르)
- 사진
UCI 로고
- 요약정보
- <정의> 수행(修行)의 결과로 생겨난 구슬형의 유골(遺骨)을 담아 봉안(?安)하는 병(甁). <유래 및 발달과정> 역사적으로 볼 때 석가모니의 열반 뒤 제자들이 인도의 장례법에 의하여 유신(遺身)을 다비하였더니 8곡 4두(八斛四斗)나 되는 많은 사리가 출현하여 이를 8국에 분배하여 봉안하였고‚ 그 뒤 아소카왕[阿育?] 때에는 팔만사천의 불‚ 사리탑을 건립하는 등의 사리신앙이 매우 성행하였다. 사리는 진신사리(眞身舍利)와 법신사리(法身舍利)로 구분되는데‚ 진신사리는 부처님의 결정체인 유골(遺骨)이며‚ 법신사리는 불경(佛經)을 비롯한 옷[衣]‚ 바리[鉢]‚ 지팡이[杖]‚ 좌구(坐具) 그리고 금‚ 은 등이나 모래‚ 풀‚ 대나무‚ 나뭇가지까지도 될 수 있다. 이러한 사리를 봉안하는 곳이 바로 불탑이며‚ 사리를 안치할 때에는 사리장치(舍利裝置)를 마련하여 탑 안에 봉안(?安) 하였다. 사리장치(舍利裝置)의 재질로는 대개 흙(土)‚ 돌(石)‚ 금속(金屬)‚ 수정(水晶) 등이 사용되는데‚ 흙은 주로 바깥그릇〔?器〕에 사용되고‚ 수정은 사리를 직접 담는 데에 쓰이는 것이 통례이며 재질이 귀한 것부터 차례로 포장하는 것이 원칙이다. 사리용기로 금‚ 은‚ 동‚ 석을 사용하는 것은 『대반열반경(?般涕般經)』 권 하(卷下)의 석가의 보관(寶棺)이 금‚ 은‚ 동‚ 철의 4중관이었다는 기록을 따른 것이 아닌가 한다. 중국 사리장치의 예로는 수나라의 인수백탑(仁壽百塔) 사리장치를 들 수 있다. 이 사리장치는 녹색유리병에 사리를 넣은 뒤 내함(內函)을 금‚ 은‚ 동함으로‚ 그리고 외함(?函)은 석함(石函)으로 하였다. 우리나라의 사리 전래는 549년(진흥왕 10) 양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어 불사리(佛舍利)를 보내와서 왕이 백관과 함께 흥륜사(興輪寺)에서 맞이하였다는 것이 사리 전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다. 그 뒤 안홍(安弘)이 진(陳)나라에 들어가서 법을 구하고 호승비마라 등과 함께 귀국할 때 『능가경(楞伽經)』‚ 『승만경(勝壇經)』과 불사리를 가지고 귀국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사리를 넣어두던 사리병(舍利甁)으로 총 4점이 있다. 모두 같은 형태이나 각각의 크기가 다르다. 뚜껑은 인도 스투파(stupa)의 형태를 형상화(形象化) 시킨 것으로‚ 상단에는 보주형(寶?形)의 둥근 구슬 아래에 3개의 원판이 층을 이루고 있다. 바닥은 원형의 굽이 있으며 내부는 비어 있다. 청동제로 채색을 하지 않았고 부식이 심하다. <참고문헌>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992. May‚ Reginald Le?著‚ 山田滿里子 譯‚『東南アジアの佛敎美術』‚ 東京: 明石書店‚ 1999.
- 저작물 파일 유형
- 저작물 속성
- 1 차 저작물
- 공동저작자
- 1유형
- 수집연계 URL
- http://www.emuseum.go.kr
- 분류(장르)
- 사진
- 원문제공
-
원문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