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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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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산신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2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산신도(山神圖) <정의> 민화는 한 민족이나 개인이 전통적으로 이어온 생활 습속에 따라 제작한 대중적인 실용화를 말하며 그 중 산신도는 인물화로 분류된다. <개설> 일반적으로 민속에 얽힌 관습적인 그림이나 오랜 역사를 통하여 사회의 요구에 따라 같은 주제를 되풀이하여 그린 생활화이다. 비전문적인 화가나 일반 대중들의 치졸한 작품 등을 일컫는 말로 쓰이기도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직업 화가인 도화서(圖怜署)의 화원(怜員)이나 화가로서의 재질과 소양을 갖춘 화공(怜工)이 그린 그림도 포함시켜 말하고 있다. 나쁜 귀신을 쫓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기를 바라는 대중의 의식과 습속에 얽힌 그림‚ 집 안팎을 단장하기 위한 그림‚ 병풍 족자 벽화 같은 일상생활과 직결된 그림이 민화의 주류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의 토속적인 무속신앙을 여실히 보여주는 산신도 역시 민화의 인물화에 포함된다. 산신이란 마을과 인간의 안전을 지켜주는 지신(地神)으로 예부터 서민들에게 널리 받들어?다. <역사> 민화의 시초는 고구려 벽화부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뒤 고려시대에도 당시 나름대로의 민화적 표현이 있었겠으나 오늘날 전혀 남아 있는 것이 없고 본격적으로 민화의 성격이 드러나며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부터이다. 지금 남아 있는 민화도 대부분 조선시대‚ 특히 조선시대 후기 이후의 것이 대부분이다. <일반적 형태‚ 특징> 산신도는 주로 수염을 기른 신선풍의 산신이 심부름하는 사자(使者)로 호랑이를 데리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산신 옆의 호랑이는 때때로 매우 해학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산신도는 무당집의 신당(神堂)이나 마을의 신당‚ 사찰의 삼성각(三聖閣)에 모셔졌다. <사회적 의의> 민화는 일반대중의 실용적 요구로 인해 그려진 소박하고 꾸밈없는 그림으로 실내를 장식하는 데 이용되었다. 따라서 민화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생활과 밀착되어 생활공간과 사람을 하나로 맺어 주는 교량 역할을 하였다. 생활공간을 편안하고 아늑하게 때로는 훈시적(訓示的)으로 이끌어 주는 민화의 매력적인 역할 때문에 민화는 점점 더 많이 그려지게 되었고 실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생활화(生?畵)가 되었다. (감정평)조선시대 후기 사찰내벽의 탱화류에 속하는 산신각의 산신도로 장식된 것으로 사료된다. 또한 민간무속신앙으로 신당후벽에 붙였던 그림이다. 기법은 당시의 신선사상의 풍미로 유행된 산신도이다. 상태가 양호하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대백과사전‚ 199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민화(빛깔있는 책들)‚ 1993‚ 대원사 꿈과 사랑(매혹의 우리민화)‚ 1998‚ 호암미술관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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