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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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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전세보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19세기 초 목판인쇄본으로 간행된 환영지(環瀛志)를 바탕으로 절첩식(折帖式)으로 꾸민 천문지리서. <유래 및 발달과정> 천문학은 인류문명이 시작되는 바빌로니아 시대부터 점성술(占星術)이나 달력의 작성과 관련을 가지고 발달되었으므로 자연과학 가운데 가장 일찍 시작된 학문이다. 또‚ 천체의 관측으로 지구 위에서의 위치가 알려지는 원리는 항해하는 데 이용되었다. 이런 목적으로 천문학은 크게 발달되어 17세기에 망원경이 발명된 후 프랑스의 파리천문대‚ 영국의 그리니치천문대 등의 큰 천문대가 창설되었다. 이처럼 천문학은 실용적인 필요성에서 발달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천문학이 발생했는데‚ 별자리 이름이나 그에 얽힌 전설‚ 몇 개의 별의 이름이나 미리내라고 하는 은하수에 대한 고유명사들로 미루어 보아 중국의 천문사상과는 다른 특유한 천문학적인 지식이 발달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고분벽화에 등에 그려진 그림이나 그밖의 물품에서 보이는 것들은 모두 중국 천문학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는 일찍부터 중국천문학의 지식이 도입되었고 그 영향 아래에서 천문학이 발달되어온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중국에서 갖가지 천문역법을 도입‚ 소화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우리 나름대로의 창조성을 발휘하였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환영지(環瀛志)는 1770년(영조46) 위백규(魏伯?‚ 1727-1898)가 짓고 1822년(순조22)에 그의 후손 위영복(魏榮馥)이 간행한 것으로‚ 천문(?文)‚ 성위(星緯)‚ 절서(節序)‚ 운회(運會)‚ 지리(地理)‚ 강역(疆域)‚ 국도(國都)‚ 산천(山川)‚ 제왕국통(帝?國統)‚ 성현도통(聖賢道統)‚ 명물(名物)‚ 도수(度數)‚ 도석(道釋)‚ 병진(兵陣)‚ 관직(官職)‚ 궁실(宮室)‚ 능묘(陵墓) 등으로 분류 해석하고 64개의 도해(圖解)를 붙였다. 이를 바탕으로 꾸민 전세보는 전체길이 380cm를 26면으로 절첩하고 천문도‚ 조선지도‚ 중국지도‚ 중국역대계도‚ 세계도‚ 병진도‚ 천하도 등을 그렸다. 제1도-제5도까지는 중성기?일월오성도?남북성도?동서성도 등의 별자리가 그려져 있고 제6도는 중국?조선?일본의 지리상황을 자세히 밝힌 천하도이며 제7도-제11도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지리를 그렸다. 제12-제13도는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 명말(明末)까지의 황제들의 계보를 기록했으며 제14-제15도는 한반도를 남북으로 나누어 자세히 그렸다. 제16도는 동국역대 왕조의 이름 즉 단군(檀君)‚ 사군(四郡)‚ 삼한(三韓)‚ 신라(新羅)‚ 고려(高麗)만을 썼고 제17도는 하도(河圖)‚ 낙서(洛書)‚ 팔괘(八卦)가 그려져 있다. 제18도-제21도는 음양오행‚ 일월동하구도(日月冬?九道)?일영일단(日永日短)‚ 육궁(六宮)의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제22도-제25도는 여러 가지 군대의 진열모양이 그려져 있는 군진도(軍陣圖)와 군행진도(軍行進圖)이다. <참고문헌> 박물관명품도록(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 2002) 『전세보(傳世寶)』(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 1999)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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