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천고수석도

추천0 조회수 68 다운로드 수 0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천고수석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고희동(高羲東)이 1956년에 그린 수묵담채화. <작가설명> 춘곡(春谷) 고희동(高羲東‚ 1886-1965)은 대한제국 말기에 군수를 지낸 고영철(高永喆)의 셋째 아들로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1904년 궁내부주사로 취직하였으나 을사조약(1895년)이 맺어지자 관직생활을 버리고 현실도피책으로 그림을 시작하였다. 고희동은 당대의 대가로 알려진 안중식(安中植‚ 1861-1919)과 조석진(趙錫晉‚ 1853-1920)에게 그림을 배웠다. 그러나 당시 중국화보 임모(臨模) 일색의 화단에 환멸을 느낀 그는 궁내부시절 외국인들과의 접촉으로 대할 수 있었던 서양의 그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09년엔 일본 동경미술학교 양화과에 입학하여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본격적인 서양화를 공부하였다. 5년간의 서양화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 당시 서화계의 중진과 대가들과 함께 근대적인 미술단체인 서화협회(書畵協會)를 결성하였다. 서화협회의 중심적인 활동인 회원작품전은 최초의 근대적 면모를 갖춘 전시회로서 의의를 가진다. 해방이후 조선미술건설본부 중앙위원장‚ 국전 심사위원‚ 대한미술협회 회장‚ 민주당 참의원 등으로 활동했다. 한편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은 1920년경부터 다시 동양화로 전향하여 서양화적 수법을 가미한 스타일을 개척하였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탐승><금강산진주담폭포> 등이 있다. <작품설명> `천고수석호화(?古壽石?華)`라는 화제(畵題)가 있고 `병신맹춘삼월(丙申孟春三月) 축성신여학교창립이십주년기념(祝誠信女學校創立二十周年記念) 춘곡고희동화(春谷高羲東畵)`라고 관서하고 있어 그림을 그린 연대‚ 그림을 그린 목적‚ 작자를 밝히고 있다. 병신년(丙申‚ 1959)에 그린 이 그림은 수묵담채화로서 전통적 소재인 매화‚ 국화와 바위를 어울려 그렸다.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상징으로 옛부터 즐겨 그려온 괴석을 화면 정중앙에 배치하고 그 뒤로 국화와 매화를 원형구도로 안정되게 표현했다 <참고문헌> 『근대를 보는 눈』(국립현대미술관‚ 1997) 오광수‚ 『한국현대미술사』(열화당‚ 198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고희동(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8)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