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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미도 등대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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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팔미도 등대 현판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인천 광역시 중구 용유동의 팔미도에 있는 등대. <발달과정 역사>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로 1903년 6월 처음으로 불을 밝힌 인천항 입구의 등대로 등탑에 설치된 석유등 불빛은 10KM 밖에서도 식별할 수 있었으며‚ 현재는 전등으로 교체하여 사용하고 있다. <일반적 형 태및 특징> 등탑구조와 특징 구 조 : 콘크리트로 건축된 백색 원형으로 높이 7.9M 특 징 : 철근을 사용하지 않는 콘크리트 공법으로 건축되었으며 출입문 부근에는 석축으로 축조됨. 설계자 : 일본국 석조 원형 백색 등기명형: 제6등급 수은조식 회전등명기 석유증기 백열등 등 질 : 연섬석 24초를 격하여 16초에 3섬광 광달거리: 20리 공사기간: 1902년 5월 기공 1930년 4월 준공 (4월부터 5월까지 등명기 및 회전장치설치) 점등일 : 1903년 6월 1일 초대 등대원: 일본인 모리카메기‚ 세치가와 츄우치 <참고사항> 팔미도등대: 1902년 공사를 시작해 1903년 6월에 건립된 한국 최초의 근대식 등대이다. 공사는 탁지부(度支部) 산하 해관등대국(涇關燈臺局)이 맡았다. 높이는 7.9m이며‚ 지름은 약 2m이다. 해발고도 71m의 팔미도 꼭대기에 세워졌고‚ 처음에는 90촉광짜리 석유등을 사용하였다. 6·25전쟁 때는 켈로부대(대북첩보부대) 대원들이 이 등대를 탈환해 1950년 9월 15일 불을 밝힘으로써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길잡이 역할을 하였다. 8·15 광복 후 교통부에서 인수하면서 정식으로 등대원을 파견하였고‚ 1954년 9월부터 자가 발전시설을 갖추고 백열등으로 불을 밝혔다. 1962년 무선표지국을 설치한 뒤‚ 1967년 수은등으로‚ 1981년 할로겐등으로 각각 바꾸었고‚ 1992년에는 태양광발전 장치를 설치하였다. 2003년부터는 위성항법 위치정보 송출장치를 비롯해 각종 첨단장비와 등탑·전망대를 갖춘 지하 1층‚ 지상 4층‚ 높이 31m의 새로운 등대를 건설하고 있는데‚ 이듬해 2월 이 등대가 완공되면 기존의 등대는 더 이상 등대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2003년 한국 등대 설치 100주년을 기념해 주변에 기념 조형물인 `천년의 빛`이 건설되고‚ 해양수산부에서 해양문화유산으로 지정함으로써 100년 동안 불을 밝혀 온 팔미도 등대는 폐기되지 않고 영구 보관하게 된다. 인천광역시 중구 용유동 산 372번지 팔미도에 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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